"에드워드 티치"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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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상선 한 척을 나포한 티치는 배의 이름을 [[앤 여왕의 복수호]]라고 명명하고 대포 40문을 장비했다. 유명 해적으로 부상한 티치는 뻑뻑한 검은 수염과 공포스러운 외모로 "검은 수염({{lang|en|Blackbeard}})"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티치는 적들을 공포에 질리게 하기 위해 모자 아래에 [[화승]]을 묶고 불을 붙이고 다녔다고 한다. 티치는 해적 동맹을 결성하여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찰스턴]] 항을 봉쇄하는 위명을 떨친다. 찰스턴 시민들에게서 돈을 뜯어낸 뒤 티치는 앤 여왕의 복수호를 노스캐롤라이나 뷰포트 인근의 모래톱에 좌초시키고 보넷과 결별, 노스캐롤라이나 [[바스 (노스캐롤라이나 주)|바스 읍]]에 정착하여 사면령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얼마 뒤 티치는 다시 해적질로 복귀했고, [[버지니아 주지사]] [[알렉산더 스퍼츠우드]]는 병사, 수병들을 조직하여 티치 토벌에 나섰다. 그리하여 1718년 11월 22일 [[로버트 메이너드]] 중위가 이끄는 소규모 군대의 공격을 받은 티치는 그 선원들과 함께 격렬한 전투 끝에 죽임을 당했다.
 
기민하고 교묘한 지도자였던 티치는 해적질을 하면서 재물을 뜯어내고자 하는 대상들에게 무력보다는 자신의 공포스러운 이미지를 사용했다. 오늘날 흔히 해적 하면 생각하는 폭군 같은 모습과 달리 티치는 해적단 내의 배들의 선원들의 동의를 얻어 그들을 지휘했으며, 포로로 잡은 이들 학대하거나 살해했다는 기록도 없다. 사망한 뒤 티치는 낭만화되어 해적을 소재로 한 여러 장르의 가공의 작품들의 모델이 되었다.
 
== 초기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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