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슬라우스 포스투무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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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6년]] [[7월 4일]]부터 [[7월 22일]]까지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었던 [[메흐메트 2세]]의 명령을 받은 오스만 제국 군대가 난도르페헤르바르(Nándorfehérvár, 현재의 [[세르비아]] [[베오그라드]])를 포위하면서 라디슬라우스는 헝가리 왕국을 떠나 [[빈]]으로 피신했다. 후녀디 야노시는 오스만 제국 군대를 물리쳤지만 2주일 만에 사망하고 만다.
 
헝가리 군대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울리크 2세는 라디슬라우스와 함께 헝가리로 귀환했지만 1456년 11월 9일 [[후녀디 야노시의야노시]]의 아들인 [[후녀디 라슬로]](Hunyadi László)에게 암살당하고 만다. 라디슬라우스는 후녀디 라슬로를 사면시켰지만 [[1457년]] 3월에 후녀디 라슬로를 처형했다. 이에 후녀디 가문과 후녀디 라슬로를 지지하던 세력들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라디슬라우스는 빈으로 피신하게 된다.
 
[[1457년]] [[11월 23일]] [[프라하]]에서 사망했으며 그의 시신은 프라하 [[성 비토 대성당]]에 안치되었다. 한때는 라디슬라우스가 이르지 스 포데브라트에 의해 독살당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1985년]]에 있었던 시신 부검에서 [[백혈병]]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의 사망으로 인해 합스부르크 가의 알브레히트 계열의 혈통은 완전히 단절되고 만다. 오스트리아의 공작은 [[프리드리히 3세 (신성 로마 제국)|프리드리히 5세]], 헝가리의 국왕은 [[마차시 1세]], 보헤미아의 국왕은 이르지 스 포데브라트가 승계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