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소보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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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nez Lazar, Vladislav Titelbah.jpg|thumb|left|200px|[[세르비아왕 라자르]]]]
세르비아군이 오스만 제국군을 [[플로크니크 전투]]에서 패퇴시킨 이후, 오스만의 통치권을 장악한 술탄 [[무라드 1세]]는 1389년 여름 그의 군대를 필리포폴리스([[플로브디브]])에 집결시키고, 3월 3일 [[이히티만]]을 출발했다. 그곳으로부터 무라드의 군대는 벨부즈드([[큐스텐딜]])와 [[크라토보]]를 횡단했다. 라자르의 영지에 바로 접근할 수 있는 [[소피아]]와 [[니자바]] 계곡을 지나는 다른 루트보다 더 긴 길을 지나 오스만 군은 전략적으로 중요하며 발칸반도의 중요한 통상로 중 하나인 코소보로 향했다. 코소보에서 무라드의 군대는 라자르, 혹은 [[부크]]의 영지 둘 중 하나를 공략할 수 있었으며, 이탈리아로 움직일 수도 있었다. 코소보에서 머물고 있는 동안 무라드와 그의 군대는 [[쿠마노보]], [[프레제보]]와 [[근지란]]을 지나 [[프리스티나]]로 향했고 그들은 [[6월 14일]]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ref name=VE9/>
 
그러나 그들은 라자르의 준비에 대하여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없었는데 이는 무라드가 그의 군대를 [[주즈나 모라바]]의 강둑 근처에 있는 [[니슈니시]]에 군대를 집결시킨 것을 보아 추측할 수 있다. 무라드의 군대는 그들이 무라드가 [[프로쿠플제]]를 통과해 코소보로 향하기 위해 벨부즈드로 이동하는 것을 알기 전까지 니슈에니시에 머물러 있었다. 세르비아의 기독교 군단을 지휘하는 라자르군은 코소보에서 무라드의 군대와 만나게 되었다. 이는 라자르가 선택한 최상의 전장이었으며, 이는 그가 무라드의 군대의 이동을 가능한 한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ref name=VE9/>
 
=== 군대의 구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