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바뀜

수정 추가
1월 28일 자정에 [[중화민국]]과 [[일본 제국]] 양군이 북사천로에서 충돌이 시작되었다. 이곳은 조계지 개정방위계획에 따라 일본군이 담당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중화민국 정부에는 통보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따라서 중국의 주권지에 속했는데, 중국은 일본에 맞서 자위권을 행사한 것이다. 일본군은 개전 3일 만에 본국 증원군을 요청하여 2월 1일 해군 사령부는 2개의 육군 부대를 증파하고, 제3함대를 편성하여 해군병력을 지원하였다. 장제스의 중앙 정부에서도 3개 비행대대, 중포, 직속 2사단, 독일식 사단(87, 88사단)으로 구성된 최정예 5군, 헌병연대, 세무경찰연대를 증원하였다. 이들의 중장비는 화력이 빈약한 19로군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다시 19로군의중국군의 완강한 저항에 막히자, 일본은 [[일본 제국 육군 9사단]]을 주력으로 한 병력을 증파 16척의 수송선에 나누어 15, 16일 상하이 항과 오송부대에 상륙하였다.
 
9사단장 우에다와 19로군 군단장 채정해는 영국이 주선한 중일 양국군 대표 회담을 통해, 입장을 조율하려 하였으나, 일본의 음모에 의한 전쟁이기 때문에 양측의 간극은 좁힐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2월 10일 다시 양군이 충돌하게 된다. 일본은 19로군의 방어를 뚫지 못해서 또 한차례 증원을 본국에 요청하게 되는데, 일본에서는 또 다시 2개의 사단이 증파된다.
익명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