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음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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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무의 기원은 보통 히말라야나 중국의 운남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으며 초기에는 후추 등의 향신료처럼 음식에 넣는 감미료로 많이 사용되었다. [[육우]] 에 의해 차를 마시는 방법은 집대성되고 차가 다른 음식으로부터 독립해서 독자적인 문화로 자라기에 이른다.
=== 한국의 차문화 역사 ===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에 [[고구려]]의 [[승려]]들을 통해서 전해진 것이거나 [[수로왕]]의 부인이었던 [[허황옥|허씨]]가 [[아유타국]](지금의 [[인도]])에서 씨를 들고 온 것이라 여겨지는 두가지 설이 있다. 확실한 기록은 [[신라]] [[흥덕왕]]때 [[당 문종]]에게서 선물로 받은 [[차나무]] 씨앗을 [[지리산]]에 심었다는 것이다. 고구려의 고분에서는 차가 출토되었으며 하동 지역에는 최고령 차나무가 존재하며 수령은 신라시대에 거의 닿는다. 오늘날에도 자주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라는 말이 널리 쓰일만큼 [[고려]]시대까지 차문화가 번성했으며 대부분 귀족과 승려층에서 소비되었다. 고려시대에는 [[고려 성종|성종]] 때부터 다방이라는 관청이 있었으며 차와 관련된 왕가의 의식 및 약과 술 등을 다루었고 국가의 제사의식때 쓸 차를 관리했다.
 
고려시대부터 차에 상표나 부르는 이름이 생겼으며 차가 생산되는 지역에서는 다세제도가 생겨 일정한 수준의 차를 세금으로 걷고 등급을 붙었는데 눈이 내릴 때 들짐승을 피해 산에 올라가서 싹을 따서 여러차례 수작업을 거쳐서 진상해야하는 물건인 만큼 주민들이 차때문에 농사를 망치는 사태가 벌어져 [[이규보]]나 [[이제현]]등의 당대 문신들로부터 상소가 빈번히 올라간 기록이 있다. 주민들은 산에 들어가 차나무를 없애서 차를 생산하지 않거나 차농사를 짓고 나머지 농사는 망치는일이 벌어졌다.이런 유래로 녹차는 작설차라는 이름으로 보다 잘 알려져 있으며 [[이제현]]이나 [[원천석]]등의 싯구에서 차에 대해 표현하는 어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