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스 4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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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은 완전히 아기스를 지지했다. 그러나 민회에 앞서 법안을 채택할 권한은 장로회에 있었고, 부자들은 장로들을 설득해 한 표 차이로 이를 부결시켜 버렸다.
 
레오니다스는 이국에서 길러졌으며, 또한 외국인 아내를 취했다. 리산드로스는 오래된 법률을 들고 나와 레오니다스를 탄핵했다. 그 법률에는 “헤라클레스의 후손인 스파르타 시민은 외국 여자와의 사이에 아들을 낳지 말 것이며, 또한 스파르타에서 이국으로 이주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이 재판을 레오니다스에게 걸자, 그는 아테네 신전으로 도망쳐 망명을 희망했다. 그는 신전에서 나오지 못한 채 유죄 판결을 받아 왕위를 사위 클레옹브로토스 2세에게 물려주어야 했다.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