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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가 병으로 죽자 오나라와 촉한은 촉한의 사신인 [[등지]]의 의견을 받아들여 우호 관계를 회복하고 함께 위나라에 대항하게 된다. 손권은 군사 면에서 육손은 오나라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존재가 되어 위나라가 종종 오나라를 침공해오지만 그 때마다 육손의 전략으로 가까스로 저지시켰다. 그 후 오나라 신료들의 맹활약 덕분에, 마침내 손권은 제위에 올라 [[황제]]가 되었다.
 
[[244년]] 육손은 [[고옹]]의 뒤를 이어 [[승상]]에 임명되었다. [[손화]]와 [[손패]]의 후계자 분쟁에서는 이미 태자인 손화를 지지하였고, 손패파의 핵심 인물 전기를 그 아버지 위장군 [[전종]]이 옹호하자 이를 비판하는 편지를 보내 전씨 일족과 사이가 벌어졌다. 육손은 손권에게 상소를 올려 태자를 폐하지 않기를 여러 차례 말했으며, 또 직접 수도 건업으로 가서 말하고자마했지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바아다여지
 
마침내 전종 부자는 육손의 외가며 태자를 지지하는 [[고담 (동오)|고담]], [[고승 (동오)|고승]], 요신 등을 참소하여 유배보냈고, 또 육손과 편지를 주고받은 [[오찬]]은 그로 인해 하옥되어 주살당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손권은 육손을 질책하였다. 육손은 이듬해 63살의 나이로 화병으로 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