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 (정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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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의 기원은 [[광해군]] 때의 [[정인홍]]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매천 [[황현]]에 의하면 '[[광해군]] 때 [[이이첨]]이 정권을 잡고 [[정인홍]]을 삼공([[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자리에 앉혔다.<ref name="hwang32">황현, 《매천야록》 (정동호 역, 일문서적, 2011) 32페이지</ref>'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항상 대사를 처리함에 있어 이들 산림은 현직 권력자와 '겉과 속이 통하였으며 유현지론([[유학]]에 정통하고 언행이 바른 사람임을 논함)을 빙자하여 흉중에 들은 것을 행하였다. 그러자 당국자들은 그것을 정치의 표본으로 삼았는데 정국이 바뀔 때마다 벼슬을 그만두고 은거한 사람들 중에서 추천하여 영수를 삼았다.<ref name="hwang32"/>'고 하였다.
 
이런 전통은 후대에도 계속되어 [[조선 인조|인조]] 대의 김장생, 장현광 [[김상헌]], [[박지계]], [[김집 (1574년)|김집]], [[안방준]], [[조선 효종|효종]]대의 [[허목]], [[김홍욱]], [[송시열]], [[송준길]], [[홍우원]], [[윤선도]], [[윤휴]], [[조선 숙종|숙종]]대의 [[권상하]], [[윤증]], [[조선 정조|정조]]대의 [[김종수]], [[안정복]] 등이 산림의 영수로서 중용되었다. 이들은 수많은 제자들을 통해 조선 시대의 여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 경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