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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톨레마이오스 6세는 30년 가까이 안정된 정치를 했지만, [[기원전 145년]]에 시리아에서 패배하여 전사하면서 그 부하였던 용병들은 승자 쪽으로 흡수되었으며, 때문에 에우에르게테스는 군대를 이끌고 이집트로 돌아와 왕의 아내였던 [[클레오파트라 2세]]와 그의 아들 [[프톨레마이오스 7세]]를 수중에 둔다. 또한 모자의 생명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클레오파트라 2세와 결혼하면서, 이후 딸인 클레오파트라 3세와도 결혼을 했다.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자 왕위 계승자로 내정된 [[프톨레마이오스 7세]]를 죽이고 로마의 지원을 받아 이집트를 장악했다.
 
그러나 모녀와 동시에 결혼한 것이나, 잇따른 전쟁과 증세로 인기가 떨어진 프톨레마이오스 8세는 백성들의 지지를 잃었다. 폭동이 일어나고 반도들이 궁궐을 에워싸기도 했다. 게다가 궁중에서 프톨레마이오스 8세와 클레오파트라 2세, 3세의 권력 다툼이 계속되었다. 결국 클레오파트라 2세가 알렉산드리아에서 군사를 일으켰기 때문에 프톨레마이오스 8세는 젊은 클레오파트라 3세와 키프로스로 탈출하게 된다. 이집트는 남은 클레오파트라 2세를 다스리게 되었지만, 프톨레마이오스 8세는 앙심을 품은 탓인지 자신과 클레오파트라 2세 사이에 태어난 아들인 멘파이테스를멤파이테스를 썰어 죽이고 생일에 맞춰 보냈다고 전해진다. 또한 왕에 반대한 알렉산드리아의 지식인은 모두 앙갚음으로 추방과 숙청을 당했다. 그 가운데는 사모트라케의 아리스타르쿠스와 아테네의 아폴로도로스 등도 있었다. 기원전 145년에는 “모든 지식인들이 추방되었다. 문헌학자, 철학자, 기하학 교사, 음악가, 화가, 교사, 의사 외에도 있었다. 그 결과로 ‘학식이 그리스와 다른 이방인으로 빚어졌다’라고 아마도 그 희생자 중 한 명이 말했다. "(발카의 메넥레스, 그리스 역사가 단편집 270 F 9){{sfn|Habicht|1988|p=9}}
 
그리고 자세를 다잡은 프톨레마이오스 8세는 [[기원전 129년]]에 키프로스에서 이집트로 쳐들어가 다시 이집트의 지배자로 복귀했다. [[기원전 116년]]에 사망하였고, 유언에 따라 [[클레오파트라 3세]]가 이집트를 물려받았다.{{sfn|클레이튼|1999|p=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