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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력 ==
=== 창설 초기 ===
1951년, 4년제 육군 사관학교 첫 입학생 중 영남 출신 생도인 [[전두환]], [[노태우]], [[김복동]], [[최성택]], [[박병하]] 등 5명이 5인이5성회를 조직한 5성회가것이 시초이다.
 
1961년 말 [[전두환]], [[노태우]], [[손영길]], [[정호용]], [[권익현]], [[최성택]], [[백운택]] 등 육사 11기들이 친목 모임으로 칠성회를 만들었다. 이게 나중에 하나회로 바뀌었는데, 오성회 구성원이었던 [[김복동]]은 그때 탈퇴탈퇴했다.<ref>박정희가 키운 하나회의 쿠데타, 왜 진압 못했나, 프레시안, 2016.09.08</ref>했다.
 
[[전두환]] 주도로 육군사관학도들은 [[5·16 군사 정변]] 지지 시위를 벌였고, 이는 박정희 소장의 관심을 끌었다. 이후 5성회는 회원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여 확대 개편 과정을 여러번 거쳤다. 이들은 1963년 7월 6일을 기점으로 육사 8기를 몰아내기 위해 '7·6 친위 쿠데타'를 기획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동향 출신 세력을 키우고자한 박정희는 이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하나회에 가입하기 위해서 가입 대상자는 보스에게 절대 복종을 강요하는 서약 절차를 거쳤다.
 
* 하나회의 선후배와 동료들에 의해 합의된 명령을 복종한다.
* 이상의 서약을 위반할 시 '인격말살'을 감수한다
 
하나회 회원들은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보안사령부 내사과 등의 진급 담당 요직을 점거하여 승진이나 자리이동때 선배가 후배를 추천하고 밀어주는 식으로 군내 주요 요직을 독점하였다. 1973년 [[윤필용 사건]]에서 수사 도중 '''하나회'''의 실체가 드러났다. [[강창성]] 보안사령관이 조사한 하나회는 (1) 정규육사 출신을 기본 정원제로 가입, 10명 내외로 (2) 회원 다수는 영남 출신이 점한다. (3)비밀 점조직 방식으로 조직하되 가입시 조직에 신명을 바쳐 충성할 것을 맹세케한다. (4) 고위층으로 부터 활동비를 지급받거나 재벌로부터 자금을 징수 (5) 회원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진급 및 보직 상의 특혜 라고 밝혀졌다.<ref>한용원, 한국의 군부정치 320~321쪽</ref>
 
팀의 초기 리더는 [[윤필용]]과 [[전두환]] 등으로 1973년 [[윤필용 사건]]으로 한풀 꺾이지만, 조직의 다른 우두머리인 [[전두환]]은 기적적으로 보안사령관으로 복귀, 그에 대한 [[박정희]]의 각별한 신뢰를 바탕으로 그 이후에도 계속 세력을 확장하였다. 하나회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충성을 맹세하며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엄청난 세력이 되었으며, 서로에 대해 "형님"이라는 암호명으로 서로가 하나회 멤버임을 과시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형님’은 잊어도 ‘장포스’는 못 잊는다
|url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8069
|출판사 = 시사인
|출판사 = 시사인 |저자 = 고제규 기자 |쪽 = |날짜 = 2010-08-06 |확인일자 = }}</ref><ref>{{뉴스 인용
|저자 = 고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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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1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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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ref>{{뉴스 인용
|제목 = 군대 내 '사조직' 발본색원 해야한다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47&aid=0000056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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