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페르시아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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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이 전쟁은 ‘자유’를 위한 싸움이라고 불렸고, 전후 자유를 구가하며 시와 축제의 소재가 되었다. [[스파르타]], [[아테네]], 코린토스 등 31개 그리스 연합 도시국가는 공동으로 [[델포이]]에 3마리의 꼬인 뱀의 원통을[[뱀기둥]]을 건립했다. 이것은 이후 [[콘스탄티노플]]의 [[히포드롬]]으로 옮겨져 오늘날도 그 일부가 남아있다. 이와 같이, 페르시아 원정을 통해 힘을 합쳤던 그리스였지만, 물밑에서는 유력한 폴리스 사이의 패권 다툼은 계속되고 있었으며, 특히 전후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권력 투쟁이 표면화되었다.
 
[[이오니아]]에서 페르시아 세력을 몰아낸 아테네는 일련의 전쟁에서 육군 중심 국가에서 강력한 해군력을 보유한 해상 무역 국가로 성장하는데 성공했고, [[에기나]]를 누르고, [[에게 해]] 동해안을 세력 하에 넣어 전성시대를 맞이했다. 페르시아 전쟁을 위해 아테네 주도로 체결된 [[델로스 동맹]]은 각 폴리스에서 일정한 자금을 군자금으로 모아 경제적 결속을 통해 동맹 관계를 강화한다는 취지였지만, 실태는 아테네에 의한 폴리스의 지배력 강화가 되었다. 사실, [[기원전 470년]] 무렵에 동맹을 이탈한 [[낙소스]]는 아테네 군에게 포위되어 강제로 동맹에 재가입해야 했다. 동맹국의 징수금은 아테네의 국고로 유용되어 이후 금고 자체를 아테네에 두고 아크로폴리스 재건에도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