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준경: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 223.62.204.243(토론)의 편집을 Lee Soon의 마지막 판으로 되돌림
Lee Soon(토론)의 18416090판 편집을 되돌림
18번째 줄:
숙종은 [[윤관]]으로 임간을 대신하게 하였으나, 음력 3월에 윤관이 싸워도 여진족에게 밀려 강화를 청하고 돌아오자 크게 분노하여 여진 정벌 계획을 추진하게 되었다.
 
디시위키 딱좋다! Ww
==== 제3차 여진족 토벌 ====
[[파일:General Yun Kwan 1.jpg|thumb|right|130px|도원수[[윤관]]]]
 
숙종이 승하한 후 즉위한 [[고려 예종|예종]](睿宗)은 [[1107년]] 17만 대군을 편성하여 여진족을 공격하게 하였다. 이때 척준경은 지난날 지은 죄를 윤관이 용서하였기에 용감히 싸워 발군의 활약을 보였다.
 
1107년(예종 2년)에 여진족의 동태가 심상하지 않다는 한 변장(邊將)의 긴급보고를 접하자 왕명으로 도원수 [[윤관]], 부원수 [[오연총]]의 부관이 되어 17만 대군을 거느리고 여진족 정벌에 출정하였다. 당시 여진족은 우리 나라 동북부에서 만주에 걸쳐 살면서 북부 국경지대인 함흥 지방을 위협하자 고려의 북진 정책에 역행이 되었던 여진족을 소탕하려고 출정하였으나 누차 실패하고 심려 끝에 그 원인이 여진족의 기병임을 깨닫고 왕명을 받아 오연총은 윤관과 특수부대 17만을 거느리고 여진촌락 129개를 쳐서 포로 1030명, 사살 4940명 등 큰 공을 세웠다.
 
==== 1107년의 활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