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라미스 해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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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살라미스 해전'''([[고대 그리스어]]: Ναυμαχία τῆς Σαλαμῖνος)는 [[그리스-페르시아 전쟁|페르시아 전쟁]]이 한창인 [[기원전 480년]] 9월에 [[아테나이]] 인근 [[사로니코스 만]]의 섬인 [[살라미나 섬|살라미스]]와 육지 사이의 해협에서 일어난 [[아케메네스 제국|아케메네스왕조]]가 왕조의통치하던 [[페르시아 제국]]과 [[고대 그리스|그리스]] [[도시 국가]] 연합군 사이에 벌어진 해전이다. 살라미스 해전은해전에서 그리스 같은함대가 해에승리를 시작된거두면서 [[제2차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정점을 이루었다.
 
==배경==
페르시아군의 진격을 막기 위하여 소규모 그리스 군대가 [[테르모필레]]의 고갯길을 막았으며, 그러는 사이 주로 아테나이 출신으로 이루어진 그리스 연합 함대가 [[아르테미시온]]의 해협 근처에서 페르시아 함대와 교전을 벌였다.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그리스의 후위대가후위 궤멸되자본대가 궤멸되었고, [[아르테미시온 해전]]에서도 그리스는 큰 손실을 입고 퇴각하였다. 그리하여 페르시아는 [[보이오티아]]와 [[아티케]]를 정복할 수 있었다. 그리스 함대가함대는 [[살라미스 섬]] 근처로 물러나는물러나 집결하는 한편 연합군은 [[코린토스 지협]]을 지키기 위해 준비하였다.
 
수적으로 훨씬 열세였던 그리스 연합군은 교전을 포기하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테나이의 [[테미스토클레스]] 장군에장군은 설복되어그들을 설득하여 페르시아가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해상 작전을 수행하지 못하게끔못하도록 다시 페르시아 함대와 싸우기로 하였다. 페르시아 대왕황제 [[크세르크세스 1세]] 역시 결정적인 전투를 원하고 있었다. 테미스토클레스의 속임수로 페르시아 함대는 살라미스 해협에 진입하여 두 입구를 막으려 하였다. 그러나 해협이 너무 비좁았기 때문에 페르시아의 군함들이 이동하려 하면서 흩어져버려 오히려 이들의 수적 우세는 장애가 되어버렸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리스 함대는 전열을 이루어 페르시아에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며, 최소한 200여척이 넘는 페르시아 함선이 침몰하거나 나포되었다.
 
==과정==
[[테미스토클레스]]의 속임수로 페르시아 함대는 살라미스 해협에 진입하여 두 입구를 막으려 하였다. 그러나 해협이 너무 비좁았기 때문에 페르시아의 군함들이 이동하려 하면서 흩어져버려 오히려 이들의 수적 우세는 장애가 되어버렸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리스 함대는 전열을 이루어 페르시아에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며, 최소한 200여척이 넘는 페르시아 함선이 침몰하거나 나포되었다.
 
그리하여 크세르크세스는 군대 대부분을 이끌고 아시아로 물러나고, [[마르도니오스]]만 남겨 그리스 정복을 완수하게끔 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그리스에 남은 페르시아군은 [[플라타이아이 전투]]에서 격퇴당하고, [[미칼레 전투]]에서 페르시아 해군이 무너졌다. 그 뒤 페르시아는 더이상 그리스 본토를 정복할 시도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살라미스 해전과 플라타이아이 전투는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전환점이었으며, 이때부터 그리스의 폴리스 연합은 반격에 나섰다. 여러 역사가들은 페르시아에 대한 승리가 고대 그리스를 발전케하였으며, 그 자체로 '서구 문명'을 확대하여 살리미스 해전을 인류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전투로 주장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