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리드 커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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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리드 커처'''(Astrid Kirchherr, [[1938년]] [[5월 20일]] ~ )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출생한 영국 여성 [[사진가]]이다. [[비틀즈]]와의 관계를 담아 독일 [[함부르크]]에 머무르던 그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은 것으로 유명하다. 1960년 [[서독]] [[바이에른 주]] [[뮌헨]]에서 [[사진가]]로 데뷔하였고 1년 후인 1961년 12월 25일에는 자신의 고향인 [[서독]] [[함부르크]]에서 [[비틀즈]]의 초창기 구성원이었던 2년 연하의 [[베이스 기타]] 연주자 겸 [[화가]] [[스튜어트 섯클리프]]와 결혼하였으나 이듬해 1962년 4월 10일 [[스튜어트 섯클리프]]와 사별하였고 그 후 영국인 드럼 연주자와 재혼하였으나 이혼하였으며, 독일인과 삼혼하였으나 거듭 이혼하였다.
 
현재는 [[영국]] 시민권자 신분으로 고국 독일에 거주하고 있다. 1967년 이래로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았지만 함부르크, 브레멘, 런던, 리버풀, 뉴욕, 워싱턴 D.C., 도쿄, 비엔나, 그리고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초기 작품을 전시했다. 그녀는 3권의 한정판 사진집을 출판했다.
 
== 생애 ==
=== 일생 ===
1960년 [[서독]] [[바이에른 주]] [[뮌헨]]에서 [[사진가]]로 데뷔하였고 1년 후인 1961년 12월 25일에는 자신의 고향인 [[서독]] [[함부르크]]에서 [[비틀즈]]의 초창기 구성원이었던 2년 연하의 [[영국]] [[록 음악]] [[가수]]이자 [[베이스 기타]] 연주자 겸 [[화가]] [[스튜어트 섯클리프]]와 결혼하였으나 이듬해 1962년 4월 10일 [[스튜어트 섯클리프]]와 사별하였고 그 후 영국인 드럼 연주자와 재혼하였으나 이혼하였으며, 독일인과 삼혼하였으나 거듭 이혼하였다. 현재는 [[영국]] 시민권자 신분으로 고국 독일에 거주하고 있다. 1967년 이래로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았지만 함부르크, 브레멘, 런던, 리버풀, 뉴욕, 워싱턴 D.C., 도쿄, 비엔나, 그리고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초기 작품을 전시했다. 그녀는 3권의 한정판 사진집을 출판했다.
 
=== 어린 시절 ===
아스트리드 커처는 1938년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포드 모터 컴퍼니]] 독일 지사의 전 간부의 딸로 태어났다.{{sfn|Harry|1997|p=179}} [[제2차 세계 대전]] 중 [[발트 해]] 인근의 방공호에 대피해 있을 때 해안가에서 시체를 보았다고 기억하며, 함부르크에 돌아와 있을 때엔 도시가 파괴된 상태였다.<ref name="InterviewAstridKirchherrRetrosellers">{{웹 인용|url=http://www.retrosellers.com/features10.htm |title=An interview with Astrid Kirchherr |first= |last= |publisher=Retrosellers |accessdate=30 May 2011}}</ref>
 
=== 젊은 시절 ===
커처는 초등학교 졸업 이후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함부르크의 마이스터 학교인 Meisterschule für Mode, Textil, Graphik und Werbung에 등록했지만, 본인은 흑백 사진 촬영에 소질이 있는 편이었다.<ref name="RedfernsMusicPictureGallery">{{웹 인용|url=http://gallery2.redferns.com/gallery_text/photographer_biographies/astrid_kirchherr_biog.htm |title=Photographers: Astrid Kirchherr |first= |last= |publisher=Redferns Music Picture Gallery |accessdate=30 May 2011|archiveurl = https://web.archive.org/web/20080119124001/http://gallery2.redferns.com/gallery_text/photographer_biographies/astrid_kirchherr_biog.htm |archivedate=30 May 2011}}</ref><ref>{{웹 인용|url=http://www.theater-schwedt.de/idx/info/1073/go/kirchherr/|title=Astrid Kirchherr|work=Happy Birthday Yellow Submarine|language=German|publisher=www.theater-schwedt.de|accessdate=30 May 2011}}</ref> 그 학교에서 사진 과정을 가르치던 라인하르트 울프(Rheinhardt Wolf)는 그녀의 사진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하고는 전공을 이쪽으로 바꾸라고 했으며, 이수를 마치면 자신의 조수로 고용할 것이라고 약속했다.{{sfn|Harry|1997|p=179}} 커처는 이에 1959년부터 1963년까지 울프의 조수로 일했다.{{sfn|Miles|1997|p=64}}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 커처와 그녀의 미술 학교 친구들은 유럽의 실존주의 운동에 참여했으며, 그 추종자들은 후에 레논에 의해 "Exis"라는 별명을 얻었다.{{sfn|Spitz|2005|p=222}} 1995년 그녀는 BBC 라디오 메르시사이드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의 철학은, 저흰 단지 어린 아이였기 때문에 검은색 옷을 입고 음침해 보이게 만든게 다였습니다. 물론 저희는 [[장폴 사르트르]]가 누군지 알고 있었어요.<ref name="AstridInterviewNZ">{{웹 인용|url=http://www.elsewhere.co.nz/absoluteelsewhere/505/astrid-kirchherr-beatles-photographer-interviewed-1994-young-free-and-wild/ |title=Astrid Kirchherr, Beatles Photographer, Interviewed (1994): Young, Free And Wild |first= |last= |page=|publisher=Elsewhere Ltd. |date=13 Mar 2008 |accessdate=30 May 2011}}</ref> 우리는 모든 프랑스 예술가와 작가에게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왜냐면 그들이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 때문이였어요. 영국은 너무 멀리 있었고 미국은 말하면 입만 아프죠. 결국 프랑스가 가장 가까웠던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프랑스로부터 모든 정보를 얻었습니다. 프랑스 실존주의자들처럼 옷을 입었어요... 우리는 자유롭고 싶었고, 다른 이들과는 다른 개성을 가지고 싶었고, 소위 말하는 쿨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ref name="InterviewBBCLiverpool">Kirchherr's interview with Spencer Leigh on BBC Radio Merseyside's 500th ''On the Beat'' programme, Saturday 26 August 1995.</ref><ref name="AstridKirchherrquotesPiczo">{{웹 인용|url=http://astridkirchherr.piczo.com/?g=15644731&cr=3|title=Astrid Kirchherr quotes |first= |last= |publisher=Piczo |accessdate=30 May 2011}}</ref>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