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푸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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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는 1926년 프랑스 푸아티에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18세에 바칼로레아 시험에 합격한 뒤 다시 고등사범학교 준비반 과정에 들어가 공부하지만 낙방하였다. 푸코가 고등사범학교 시험에 합격한 것은 1947년,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4년이 지난 뒤였다. 26세 때인 1951년에 교수 자격 시험에 합격한 뒤 [[루이 알튀세르]]의 추천으로 고등사범학교에서 자리를 얻어 강의를 하였다.<ref>[http://www.segye.com/content/html/2012/07/01/20120701021341.html] </ref>
 
푸코는 후기구조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로서 소르본에서 1948년까지 철학을, 1950년까지 심리학을 공부했고, 1952년 정신병리학 학위를 받았다. 1970년 이후 [[콜레주 드 프랑스의프랑스]]의 사상사 교수를 지냈다.<ref>《네이버 지식백과》문화 연구자, 2013.02.25., 커뮤니케이션북스</ref>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로 있을 때 《사유 체계의 역사》(The History of Systems of Thought)를 가르쳤는데, 이 과목의 이름은 그가 직접 붙인 것이다. 그의 글은 [[인문학]], [[사회과학]]의 많은 영역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는 [[콜레주 드 프랑스]]에 [[교수]]로 있을 때 '사유 체계의 역사'(The History of Systems of Thought)를 가르쳤는데, 이 과목의 이름은 그가 직접 붙인 것이다. 그의 글은 [[인문학]], [[사회과학]]의 많은 영역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푸코는 다양한 사회적 기구에 대한 비판, 특히 [[정신의학]], [[의학]], [[감옥]]의 체계에 대한 비판과 [[사회적 성|성]]의 [[역사]]에 대한 사상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또한 [[권력]]과 지식의 관계에 대한 이론들과 서양의 지식의 역사에 관한 '담론'을 다루는 그의 사상은 많은 토론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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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코의 계보학 ==
계보학이란 계보(系譜)·계도(系圖)에 관한 진위를 밝히기 위한 학문을 말한다. 계보학은 유산의 상속이나 왕위의 계승과 같은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보를 연구하게 되면서 생겨난 것이었으나, 역사의 연구에 있어서도 인물간의인물 간의 관계를 밝히는 작업에 보조적인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사용되었다.
 
푸코는 1970년대 전반에 출판한 일련의 글과 대담에서 니체로부터[[프리드리히 니체]]로부터 빌려온 계보학이라는 단어에 관한 자신의 개념을 규정하고 정교하게 했다. 푸코는 계보학은 “사물은 어떠한 본질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투쟁에 대한 역사적 지식을 수립하고 그 지식을 전략적으로 이용하게 만드는 넓은 지식과 지엽적인 기억의 결합을 계보학이라는 용어로 부르자고 주장한 것이다. 이 때의 계보학은 역사가 침묵시켜 왔던 사람들의 묻혀진 텍스트를 복원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이전의 역사적 절차가 무시했던 방법들을 이용한다. 고고학이 한 종류의 물질적인 것, 즉 어법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계보학은 또 다른 것, 즉 육체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