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 혁명: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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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는 동일한 왕에 의해 통치되었으나 여전히 별개의 왕국이었다. 1707년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웨일즈가 통합왕국이 되어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되었으며, 1800년 아일랜드를 통합하여 영국의 정식명칭은 그레이트브리튼과 아일랜드 연합 왕국이 되었다.</ref> 잉글랜드에서조차 양 진영의 군대에 의해 두 차례의 충돌이 있었으며, 여러 도시에서 [[로마 가톨릭]]에 반대하는 봉기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88년의 혁명은 [[1685년]]에 있었던 [[몬머스 반란]]에 비해 희생자가 매우 적었기 때문에 무혈혁명이라 불리게 되었다. [[영국 의회]]는 이 사건을 여전히 무혈혁명이라 부른다.
 
명예혁명은 유럽 대륙의 [[9년 전쟁|대동맹전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으며 종종 마지막으로 성공한 잉글랜드 침공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ref>
네덜란드의 총독이었던 오랜지공 윌리엄의 즉위를 [[노르만 왕조]]의 [[정복왕 윌리엄]]에 빗댄 것이다.</ref> 한편 명예혁명은 영국의 [[의회 민주주의]]를 출발시킨 시발점이 되었다. 이후 어떠한 영국의 왕조도 의회를 무시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는 없었다. 또한 당시 작성된 [[1689년 권리장전]]은 [[영국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