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슬라우스 포스투무스"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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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0년]] [[5월 15일]] [[세케슈페헤르바르]]에서 왕관을 받으면서 헝가리의 국왕으로 즉위했지만 헝가리 의회는 자신들의 동의 없이 대관식이 치러졌다며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헝가리 의회는 폴란드의 국왕이었던 [[브와디스와프 3세]](울라슬로 1세)를 헝가리의 국왕으로 선출했다.
 
[[1444년]] 11월 브와디스와프 3세가 [[오스만 제국]]과의 [[바르나 전투]]에서 전사하면서 헝가리 의회는 라디슬라우스를 헝가리의 국왕으로 선출했다. [[1446년]]부터 1453년까지는 [[후녀디 야노시]](Hunyadi János)가 헝가리의 [[섭정]] 역할을 수행했다. [[1453년]]에는 [[보헤미아]]의 국왕으로 즉위했고 [[이르지 스 포데브라트]](Jiří z Poděbrad)가 보헤미아의 섭정 역할을 수행했다.
 
1453년 후녀디 야노시가 섭정 역할을 포기한 뒤부터 라디슬라우스는 자신의 외사촌이었던 [[슬로베니아]] 출신의 [[첼레 (슬로베니아)|첼레]] 백작인 울리크 2세(Ulrik II)에 의지했다. 울리크 2세는 [[오스트리아]]의 남작인 울리히 아이칭거(Ulrich Eytzinger)와의 권력 투쟁에서 승리하면서 라디슬라우스의 새로운 후견인 역할을 수행했다.
[[1457년]] [[11월 23일]] [[프라하]]에서 사망했으며 그의 시신은 프라하 [[성 비토 대성당]]에 안치되었다. 한때는 라디슬라우스가 이르지 스 포데브라트에 의해 독살당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1985년]]에 있었던 시신 부검에서 [[백혈병]]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의 사망으로 인해 합스부르크 가에 있던 알브레히트 계열의 혈통은 완전히 단절되고 만다. 오스트리아의 공작위는 [[프리드리히 3세 (신성 로마 제국)|프리드리히 5세]](신성 로마 제국의 프리드리히 3세), 헝가리의 왕위는 [[마차시 1세]](후녀디 마차시, Hunyadi Mátyás), 보헤미아의 왕위는 이르지 스 포데브라트가 승계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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