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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용은 한편으로는 군사들을 모아 동궁의 친위대로 삼고 매일 훈련을 시켰다. 아버지 양견이 총애하던 궁녀를 독고황후가 죽이자 양견은 이에 항의하는 뜻으로 황궁을 나갔는데, 이때 양광이 양용에게 황궁의 수비를 담당하라 일렀고, 그 다음날 양견이 돌아와 양용은 매우 심하게 꾸중을 들었다.
 
[[600년]]에 이부시랑 [[소좌보]], 태자가령 [[주문동]] 등과 연무장에 나눈 얘기들이 양광 일파에 의해 역모로 변질되었고, 결국 [[600년]] 12월에 양용은 결국 황태자에서 폐위되고폐위되어 서인으로 강등되었다. 이 때 상서좌복야 [[고경]]이 양견을 말렸으나 독고황후의 설득으로 결국 승인되었다.
 
양용은 이궁에 갇혀 신태자 양광과 친한 무위장 [[장형]]의 감시를 받았다. 심지어 장형은 양용에게 음식도 잘 주지 않았다 하며, 의관이 누추한 것이 노비보다도 못하였다 한다. [[604년]]에 부황 양견의 병이 위중해지자 양광은 무위장 장형을 시켜 아버지 양견을 살해했으며<ref>양견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즉위하였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널리 채택되고는 있다. 하지만 실제로 양견이 시역(弑逆)을 하였는가에 대한 확실한 역사적 증거는 남아있지 않다.</ref>, 뒤이어 양광은 자신의 근위장근위장이자 [[우문술]]의 아들인 [[우문지급]]을 보내어 양용을 목졸라 죽였다.
 
== 양용이 등장한 작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