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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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풍수·도참설에 기반한 논의가 국왕의 결정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왕사 자초([[무학]])가 인왕산에서 출발한 축을 따라 하여 도읍의 터를 잡자고 주장했다는 설은 야사로 16세기 말~17세기 초에 간행된 《[[오산설림]]》에 수록되어 있는 이야기다. 실록에는 전혀 전하지 않는 이야기로, 신뢰할 수 없다.
[[1395년]](태조 4년) 6월 6일에 한양부(漢陽府)의 명칭을 한성부(漢城府)로
=== 한성의 건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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