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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계약의 첫 아이디어는 고대 그리스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이용해서 Crito 안에서 사회 계약의 아이디어를 위한 예를 만들었지만 그것을 [[공화국]]안에서 비판한다. 그 뒤 [[에피쿠로스]]는 명백하게 알려진 사회 계약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그의 마지막이자 네 번째 주요 독트린에서 국가는 각각의 시민에게 해롭지 않은 동의에서부터 나타나는 정의를 기반으로 하며 법률은 공동의 이익([[쾌락]]과 [[행복]])을 위해 만들어진다. 따라서 법은 더 이상 유리한 것이기만 하거나 정당한 것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19세기까지 대부분의 지적인 유럽인들은 고전교육을고전 교육을 받았지만 그들대부분은그들 대부분은 플라톤에게는 익숙했지 에피쿠로스에게 익숙하지는 않았다. 이것이 사회 계약론이 홉스의 시대가 되어서야 다시 주목받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 홉스의 왕권중심론 ===
=== 존 로크 ===
 
[[존 로크]]의  《[[통치론]]은 [[홉스]]의 절대군주론에 의거한 개념과는 크게 다른 사회 계약론을 담고 있다. 이는 참주에 대항하는 [[저항권]]을 발휘할 수 있다는 논의와 인민은 특정한 종류의 정부와 계약을 맺었다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결국 인민은 정부를 개조하거나 전복시킬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자유주의]]의 핵심적 사상가로 통용된다. 로크의 사회 계약론은 인간의 본유적이고(innate) 이성적인 본성이 구성하는 자연법에 대한 그의 이해와 뒤섞여 있으며, 이것은 《[[인간 이해력에 관하여]]》라는 논문 속에서 더 잘 정리되었다. 로크는 종종 그보다 약 한세대 정도만 앞서는 홉스와 종종 대비되었으며, 그들의 차이는 무엇보다도 로크의 신념과 홉스의 신념이 다르다는 것에 있었다. (''로크는 홉스와는 달리 인간은 본성적으로 선하며, 그 자체에 내재하는 성향에 의해 악과 탐욕으로 이끌리는 존재가 아니라고 보았던 것이다.)'' 로크는 백지설을 주장하였지, 성선설을 주장하지는 않았다. 로크의 사상을 굳이 정의하자면 백지설, 동양의 사상으로는 성무선악설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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