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경기전 정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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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문용이 정말 고종의 숨겨진 딸인지에 대해서는 생전은 물론 사후에도 논란이 있었는데, 생전에 이문용은 세 번 서울의 낙선재(樂善齋)를 찾아간 적이 있었지만 낙선재에서는 번번이 이문용의 방문을 거절했고, [[1974년]] 일반 면회객 자격으로 [[이방자]] 여사를 잠깐 만났으며,<ref>《경향신문》 1974년 9월 17일자 8면 기사.</ref> [[1975년]]에는 드라마 황실 출연진들과 함께 [[홍유릉|홍릉]](洪陵)을 참배하였다.<ref>《경향신문》 1975년 2월 1일자 8면 기사</ref> [[1983년]] 낙선재 전 비서실장 이공재와 고종의 당숙질(학부대신 [[이재곤]]의 아들) 이면용은 이문용의 얼굴이 고종과 꼭 닮았다며 "당시의 왕실 사정 때문에 기록에는 누락되었을지 모르지만 이문용은 틀림없는 고종의 딸"이라고 주장했다. 이문용은 1987년 3월 28일 조경묘 수직사 안방에서 향년 87세로 별세하였는데, 장례 일정이 발표되자 당시 낙선재 비서실장 이영주와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사무총장 이규성은 "이문용이 고종의 딸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고, 고종의 정실은 물론 후실까지 포함해 6명의 부인에게서 얻은 13명의 고종의 후손 모두가 관련 기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원록(璿源錄)은 물론 왕실 기록의 가장 기본이자 소상한 내용을 담은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서조차 이문용이 고종의 친딸임을 입증할 수 있는 기록은 단 한 줄도 없으며, 고종의 막내딸이었던 [[덕혜옹주]](德惠翁主)보다도 12살이나 위인 이문용을 당시 왕실의 호적 관리 전담부서였던 종친부(宗親府)에서 빠뜨렸을 리가 없다고 보았다. 상궁 출신이었던 성왕염(1987년 당시 70세) 역시 "임금과 하룻밤만 자도 당호가 붙는 법인데 임신까지 했었다면 그것을 상궁들끼리 모를 리가 없다"며 이문용이 고종의 딸이라는 이야기는 헛소문일 뿐이라고 일축했다.<ref>《경향신문》 1987년 4월 1일자 7면 기사.</ref>
 
== 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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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Jeonju History Archives.jpg|전주사고 실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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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