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카시노 전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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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상자 2차대전 이탈리아 전역}}
{{전역상자 자유 프랑스}}
'''몬테카시노 전투''' 또는 '''로마 전투'''나 '''카시노 전투'''는 추축국이 [[이탈리아 전역 (제2차 세계 대전)|이탈리아 전역]]에서 [[겨울 선]]을 형성하여 연합군의 공격을 방어하자 연합군이 4차례에 걸쳐 이를 돌파하기 위해 벌인 일련의 격전이다. 이 전투의 목적은 [[로마]]로 향하는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1944년 초, 라피도가리, 리리, 가리지리아노 계곡과 근처 능선 및 고지에 위치한 독일군은 겨울 선의 서쪽 절반을 방어하고 있었다. [[몬테 카시노]]는 [[서기|AD]] 529년 [[누르시아의 베네딕토]]에 의해 세워진 수도원이 위치한 고지였다. 이 고지는 인근 마을인 카시노와 리리 및 라피도 계곡의 입구에 위치하고 있었다. 보호된 역사지구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독일군은 이곳을 점령하지 않고 있었다. 수도원 인근의 경사면에서 독일군은 몇몇 거점을 마련했다.
 
연합군 공격 부대에 정확한 포격이 이어지자 연합군 수뇌부는 수도원이 독일군의 관측소로 사용되고 있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사상자와 함께 연합군 병사 사이에서는 공포심이 증가했고, 명백한 증거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연합군은 이곳을 파괴하기로 결심했다. 미군 폭격기가 1944년 2월 15일 1,400톤의 고폭탄을 투하했고,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ref>{{cite서적 book인용|last=Manchester|first=William|title=The Last Lion, Winston Spencer Churchill: Defender of the Realm 1940–1965|year=2012|publisher=Little, Brown|location=Boston|isbn=0316547700|edition=1st|author2=Paul Reid|page=801}}</ref> 공습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는데, 독일 강하부대가 파괴 지역을 점령해 폐허에 훌륭한 방어 시설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1월 17일부터 1월 18일 사이에 몬테카시노와 구스타브 방어선에서 연합군은 4차례의 공격을 개시했고, 20개 사단이 20마일의 전선에 투입되었다. 독일군은 마침내 그들의 방어 진지에서 물러났지만 연합군의 피해도 상당했다.<ref>Jordan, D, (2004), ''Atlas of World War II''. Barnes & Noble Books, p. 92.</ref> 몬테카시노 점령 당시 연합군은 55,0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독일군은 이에 비해 훨씬 적은 피해를 입었는데 사상자는 약 20,000명이었다.<ref name="Axelrod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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