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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초에서 한으로 ===
 
한왕 2년([[기원전 205년]]), 제나라의 실권자 [[전영]]이 항우에게 불만을 품고 모반을 일으키자 서초패왕이 전영을 치러 가면서 구강의 병사를 모으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병을 핑계대고 장수와 수천 명의 군사를 보냈으며, 서초패왕이 본국을 비운 사이 한왕 [[전한 고제|유방]]이 56만의 제후연합군을 이끌고 서초의 서울 팽성을 함몰하는데도 서초를 도와 싸우지 않았다. 이 때문에 서초패왕의 노를 사 꾸짖음을 받고 소환령을 받았으나 두려움을 품어 응하지 않았다. 서초패왕도 당장 자신을 돕는 자가 구강왕 뿐인데다구강왕뿐인데다 구강왕의 재능을 아껴 공격하지는 않았다.<ref name="s91"/>
 
한왕 [[전한 고제|유방]]은 일시 팽성을 점령했다가 서초패왕의 반격을 받아 대패하고([[팽성 전투]]) 간신히 달아났는데, 알자 [[수하]]가 한왕을 찾아가 구강왕을 꾀어 한왕의 편을 들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구강왕은 수하를 만나, 수하의 변설에 넘어가 한나라에 투항하기로 비밀리에 약조했다. 마침 서초의 사자가 구강왕을 찾아와 군사를 내도록 독촉하려고 했는데, 수하가 구강왕의 변절을 드러내는 바람에 결국 초나라 사자를 베고 서초를 공격했다. 서초는 항성과 [[용저]]를 보내 회남을 공격하게 하고 서초패왕은 하읍을 공격했다. 몇 달 못 가 용저와 항성에게 격파당하고 한왕에게 달아났다. 한왕이 자신을 무례히 대하자 분노하고 후회해 자결할 생각까지 했으나, 한에서 제공한 관사의 대접이 매우 융숭해 기뻐했다. 한편 사람을 구강으로 보내 보니, 이미 [[항백]]이 구강의 병사들을 거두고 일가족도 모두 서초에 죽었다. 옛 구강왕의 병사 중 수천 명이 다시 구강왕의 밑으로 들어왔고, 한왕은 이들을 성고 수비군에 합류시키는 한편 한왕 4년([[기원전 203년]]) 7월에 구강왕을 회남왕으로 봉했다.<ref name="s91"/>
 
한왕 5년([[기원전 202년]])에는 구강의 몇 현을 얻었고, 한왕 6년([[기원전 201년]])에는 [[유고 (형왕)|유고]]와 함께 구강으로 들어가 서초의 대사마 주은을[[주은]]을 회유했다. 이들은 함께 구강의 병사를 이끌고 한의 본대와 합류해 해하에서 초나라를 격파했다([[해하 전투]]). 항우가 죽고 한왕이 온 중국을 평정하면서 회남왕으로서 육을 서울로 삼고, 구강 · 여강 · 형산 · 예장군을 통치했다.<ref name="s91"/>
 
=== 모반, 패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