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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한국전쟁의 발발)'''
: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를 일요일 모두가 휴식하는 틈을 이용하여 미군의 대대적인 북한 침략이 시작되었다. 북한의 김일성장군은 그때당시 긴급비상회의를 열고 즉시반공격으로 넘어갈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였다. 즉시반공격을 예상하지 못하였던 [[대한민국 국군|미군]]은, 하루만에 전조선을 삼킨다던 미군은 3일만에 [[서울특별시|서울]]을 내주고 후퇴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인민군]]은 정면 공격을 통해 승리하였지만 무기가 모자라는것과 관련하여 미군을 끝까지 몰아내는데 성공하지못하였다. 한편,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던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연합국)은 대무력의 38도선침공(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하였고 이를 원인으로 하여 조선인민군은 전략적후퇴의 길에 올랐다. 7월 13일, 이승만은 미국 CBS와의 인터뷰에서 "북한군의 행동은 38선을 제거시켜 주었고, 38선에 의한 분단이 지속되는 한 한반도에서 평화와 질서는 결코 유지될 수 없다.",<ref>{{웹 인용 |url = http://images.library.wisc.edu/FRUS/EFacs2/1950v07/reference/frus.frus1950v07.i0009.pdf | 제목 =Memorandum by the Director of the Office of Northeast Asian Affairs (Allison) to the Assistant Secretary of State for Far Eastern Affairs (Rusk) |인용문=...the action of the North Korean forces had obliterated the 38th parallel and that no peace and order could be maintained in Korea as long as the division at the 38th parallel remained. |웹사이트=FRUS 1950 Vol. VII Korea |출판사=[[미국 국무부]] |쪽=373 }}</ref> "침략자를 격퇴하는 데 있어 한국군은 결코 38선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고 주장하였다.<ref>{{웹 인용 |url = http://images.library.wisc.edu/FRUS/EFacs2/1950v07/reference/frus.frus1950v07.i0009.pdf | 제목 =The Secretary of State to the Embassy in Korea |인용문=16. Press report June [July] 13 quotes Pres Rhee as voicing determination ROK not to stop at 38th parallel in repelling invaders. |웹사이트=FRUS 1950 Vol. VII Korea |출판사=[[미국 국무부]] |쪽=387 }}</ref> [[인천상륙작전]]이후 [[9월 27일]]에 [[서울]]을 수복하였다. 이후 미군과 국군과 북진을 결행하였고 [[10월 1일]]에 {{국기그림|대한민국}} [[대한민국]]이 제일 먼저 미군의 지시밑에 북진을 하였고, [[10월 7일]]에 드디어 [[미군]]이 북진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김일성]]이 이미 [[10월 9일]]에 주요적인 정부, 단체, 기관, 부대, 수뇌부 등을 [[평양]]에서 철수시킨 뒤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강계]]를 임시 수도로 정하고 주요적인 정부, 기관, 등을 그 쪽으로 철수시켰다. [[10월 12일]]에 [[김일성]] 역시 [[평양]]에서 철수하여 [[덕천]]으로 잠시 머물렀다가, [[10월 19일]]에 [[대한민국]]이 [[평양]]을 점령한 날에 [[덕천]]에서 철수하였고, [[희천]]을 거쳐 [[강계]]까지 간 다음에 중국의 펑더화이를 만났다. 한편, 대한민국과 미군은 [[압록강]]까지 올라갔으나, 그러나 10월 25일에 당시[[중국인민해방군]]과 당시소련붉은군대가 개입하자 국군과 미군을 비롯한 16개연합군의 유엔군은 다시 후퇴하였으며 [[12월 4일]]에 [[평양]]에서 철수하였고, 1달 뒤인 [[1월 4일]]엔 [[서울]]을 다시 내주었지만 [[3월 15일]]에 [[서울]]을 되찾았다. 또한, 1951년 이후 휴전 때 까지 지금의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소모전이 계속되었다. 1953년 7월 27일 교전 조선인민군과 미군은 휴전에 합의하여 분단이 고착되었다.<ref>박태균, 한국전쟁, 책과 함께, ISBN 89-91221-10-6</ref>지금도 남한땅에서 미군은 전조선을 먹어보려고 유엔과 동맹국이라는 간판밑에 각종 전쟁연습에 미쳐 날뛰고 있다.
 
=== 군사분계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