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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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현안은 다음 왕을 누구로 할 것인가였다. [[멜레아그로스]]와 보병 장교들은 [[필리포스 2세]]의 사생아, 즉 대왕의 이복 동생이었던 [[아리다이오스|필리포스 아리다이오스]]를 옹립할 것을 주장했지만, [[페르디카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제1왕비의 자식이 태어나기를 기다리자고 주장했다. 결국 [[록사네]]는 아들을 낳았고 양측의 입장을 절충하여 [[아리다이오스]]와 갓난 아들 알렉산드로스를 각각 [[필리포스 3세]](필리포스 3세 아리다이오스)와 [[알렉산드로스 4세]]로 옹립하였다. 하지만 필리포스 3세는 간질 환자였고, 알렉산드로스 4세는 갓난아이였기에 페르디카스가 왕국 [[섭정]]이 되고 멜레아그로스가 그를 보좌하기로 했다. 하지만 페르디카스는 곧 멜레아그로스를 암살하고 전권을 차지했다.
==바빌론 회의==
권력을 잡은 페르디카스는 [[바빌론 회의|바빌론에서 회의를 개최]]
최고 지위를 차지한 [[페르디카스]]는 권력욕이 심해져 아내와 이혼하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누이였던 클레오파트라와 재혼하려고 했는데, 그 이혼당한 아내가 [[안티파트로스]]의 딸이었으므로 그의 분노를 사게 되었다. 이에 [[안티파트로스]]와 [[크라테로스]], [[안티고노스]], [[프톨레마이오스]]가 남몰래 손잡고 페르디카스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기로 했다.
==디아도코이 전쟁==
[[기원전 320년]] 프톨레마이오스의 군대가 대왕의 관을 마케도니아 아이가이(Aigai)의 왕실 묘지로 운구하던 페르디카스 측 군대를 습격하여 관을 탈취하면서 양측의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되었다. 통합된 제국을 유지하고자 했던 [[에우메네스]]가 페르디카스의 명에 따라 반란자들 중 하나인 마케도니아 공동 섭정 [[크라테로스]]와 싸워 전사시켰지만, [[이집트]]로 원정을 떠났던 페르디카스가 갑작스레 암살되면서 전면전으로 비화하지는 않았다.
==트리파라데이소스 협정==
이후 〈[[트리파라데이소스 협정]]〉을 통해 전후 처리가 이루어졌다. 새 섭정은 [[안티파트로스]]가 되었으며 두 왕([[필리포스 3세]]와 [[알렉산드로스 4세]])는 마케도니아로 이송되었다. [[사트라프]] 자리도 재분배되었는데, [[리시마코스]]가 [[트라키아]]를 받았고 페르디카스 암살에 일조한 [[셀레우코스]]가 [[바빌론]]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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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산드로스와 프톨레마이오스에게 모두 한 방씩 먹인 데메트리오스는 기원전 305년 [[로도스]]를 공격했고, 엄청나게 거대한 공성탑 헬레폴리스를 동원하기도 했지만 결국 로도스를 함락하는 데는 실패했다. 대신 로도스는 프톨레마이오스를 공격할 때만 빼면 안티고노스를 지원할 것을 약속해야 했다. 데메트리오스는 그리스로 돌아가 자신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폴리스 동맹을 창설했고, 궁지에 몰린 카산드로스는 휴전 협정을 시도했으나 무산되었다.
이에 카산드로스는 안티고노스를 대적하기 위해 리시마코스와 프톨레마이오스, 셀레우코스에게 구원을 요청했고, 가장 가까운 [[트라키아]]에 있던 리시마코스가 [[아나톨리아]]에 침입하자 그리스의 데메트리오스는 부친 안티고노스를 돕기 위해 아나톨리아로 철수했다. 아나톨리아를 휩쓸고 다니던
이와 같은
결론적으로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아시아 영토의 대부분을 차지하여 헬레니즘 국가들 중에서 제일 영토가 넓게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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