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섭 (1938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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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활동 ===
[[대한민국 제13대 국회|제13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그는 야당 측의 선거무효 소송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게 된다. [[1988년]] 당시 여소야대의 정국 속에서 여당인 [[민정당]]의 의석수는 고작 5분의 2로 여당과 정부의 권력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상황이었고, 각 부처의 비밀문서의 내용도 야당의원들이 더 잘 알고 있을 정도였다. 당시 28건의 선거무효 소송이 국회에서 진행되고 있을 만큼 정계에선 여당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이 이어졌고, [[민정당]] 소속이었던 그 역시 공격의 칼날을 피해 갈 순 없었다. 야당에선 비누나 수건, 주전자 등을 제시하며 그가 지급한 대가성 물품이라며 주장했으나, 그는 결백을 주장했다. 결국 대법원은 정국의 상황을 고려하여 야당 측의 손을 들어줬고 그는 그 결과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하고 말았다. 하지만 지역주민들 사이에서는 대법원의 판결에 반발하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이후 실시된 재보궐 선거에서도 [[민정당]] 소속 [[나웅배]] 의원이 당선되는 결과를 낳았다. ([[나웅배]] 의원은 재보궐 선거에서 [[평민당]] [[이용희]] 후보를 10098표로 따돌려 38.68%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이 후 그는 [[1996년]] 실시된 총선에서 [[신한국당]] 소속으로 [[영등포]]지역에서 [[제15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다시 정계활동을 시작하게된다. 그러나 이전부터 비리,부패 등으로 문제가 많았던 소속당에게 정치적 환멸을 느낀 그는 이후 [[1998년]], [[신한국당]] 후신인 [[한나라당]] 소속에서 [[새정치국민회의]]로 소속당을 변경하기도 했다. 이 후 [[국민회의]]의 후신인 [[새천년민주당]] 사무총장직을 맡으면서 [[노무현]] 대통령 후보자의 비토론자로 활동했으며, [[열린우리당]] 창당에 가담해 중앙위원 및 상임고문 직을 맡는다.
 
=== 사회복지 활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