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1세 도를레앙: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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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오를레앙 공작 [[루이 1세 드 발루아]]와 [[발렌티누발렌티나 비스콩티비스콘티]]의 아들로 태어났다. [[1406년]] 샤를 6세의 큰딸이자 사촌누나이며 [[리처드 2세]]의 미망인이기도 한 [[발루아의 이자벨]]과 결혼했다. 이듬해인 [[1407년]] 아버지 루이가 [[장 1세 (부르고뉴 공)|장 1세]]에게 암살당했고 샤를은 복수를 다짐했다. [[1409년]] 딸 잔을 남기고 이자벨이 죽자 샤를은 아르마냑 백작 베르나르 7세의 딸 본느와 재혼, 장인인 아르마냑 백작의 힘을 빌어 반 부르고뉴 세력을 결집시켰다.
 
[[1415년]] [[아쟁쿠르 전투]]에서 [[헨리 5세]]에게 패한 루이는 포로로 잡혀 영국 각지에서 오랜 기간 동안 유폐 생활을 했으며《감옥의 노래 Livre de la Prison》은 이 시기에 쓰여진 것이다. 그가 영국에 유폐되어 있는 사이 아내 본느는 세상을 떠났다. [[1440년]]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난 샤를은 [[필리프 3세 (부르고뉴)|필리프 3세]]의 조카 마리 드 클레브와 혼인함으로써 부르고뉴파와 화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