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의 역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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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셀의 역설과 소박한 집합론(naïve set theory''') ===
이 장에서는 러셀의 역설에 대한 지배적인 의견과는 다른 관점을 나타낸다.  
 
먼저 러셀의 역설은 하나의 집합의 존재를 가정한다.  이 집합으로 인해 논리적으로 모순된 결론에 이르게 되고, 이러한 모순은 소박한 집합론이 지닌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 집합은 자신을 원소로 포함하지 않는 모든 집합을 포함하는 집합이다. 하지만, '''<nowiki/>'자신을 원소로 포함하는 집합은 존재할 수가 없다''''.  간단히 증명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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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all },  All 이 자신을 포함하게 되면,  {all, {all} } ≠ All.
 
모든 집합은 자신을 원소로 포함할 수 없으므로, 러셀의 역설이 가정하는 ‘자신을 원소로 포함하지 않는 집합을 포함하는 집합’은 모든 집합을 포함하는 집합을 의미한다.  그리고 모든 집합을 포함하는 집합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는 어떠한 논리, 집합론으로 유도해낼 수 없다는 것이고, 수학적인 객체가 아니라는 것이며, 상상의 객체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상상의 객체는 상상을 통해서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러셀의 가설은 이 상상의 객체를 하나의 집합으로 가정하고, 이 가정으로 모순된 도출해내었으므로, 이러한 모순은 집합론이 지닌 것이 아니라, 러셀의 역설에 내재된 것이다. 
 
<nowiki>칸토어가 세상에 내어 놓은 집합론은 러셀의 역설과 같은 서술이 논리적으로 참인지 거짓인지를 판별할 수 있는 강력한 수학이론이다. 이러한 소박한 집합론에서 아무 원소를 포함하지 않는 공집합을, ψ = { } 로 표시하는데,  이러한 공집합을 표현할 수 있는 서술 방법은 무한히 많다.   예를 들어 { x | x=1 and x≠1 } = ψ, 러셀의 역설에서 가정하는 집합은 수학적 대상은 아니지만, 소박한 집합론에서 공집합의 원소는 될 수 있다. 공집합에 자신을 원소로 포함시키는 과정을 되풀이하면, ψ, {ψ}, {ψ, {ψ}},….  되고, 자연수가 도출된다. 다른 수학이론의 기초가 되고, 함수를 정의할 수 있으면, 또한 무한한 대상들을 다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제공한다.  그래서, 수학자 힐버트는 칸토어의 집합론이 이끄는 세계를 수학자의 낙원이라고 묘사했다.  </nowiki>
 
소박한 집합론에서 ‘소박한’은 후대 수학자들이 칸토어가 발견한 집합론을 공리 집합론(axiomatic set theory)과 구분 짓기 위해 붙인 것이다.  ‘naïve’ 란 단어를 ‘소박한’이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했지만, ‘덜 성숙된’, ‘생각이 얕은’ 이런 느낌의 단어이다.   칸토어의 집합론에 그런 단어를 붙여 부르는 것이 옳은지는 의문이다.  
 
천재 칸토어는 집합론을 세상에 내어 놓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제논의 역설 이후 금기 시 되어온 무한의 개념을 집어 들었다.  당연히 엄청난 부담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무한한 집합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당시 수학자들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동년배인 수학자 푸앙카레는 칸토어의 집합론과 무한 수를 심각한 수학 질병이라고 불렀고, 칸토어에게 중요했던 선배 수학자 크로네커는 그를 과학 사기군, 배교자, 젊은이를 지적 타락으로 이끄는 자라고 매도 했다.  철학자들도 이러한 비난에 가세했고, 성직자들은 그의 시도를 신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여겼다. 그리고, 러셀의 역설과 베른의 역설과 같은 역설들이 쏟아져 나온다. 베른의 역설은 논리적인 역설인 러셀의 역설과 달리 의미론적(semantic) 역설로 분류된다.  베른의 역설은 20개의 미만의 영어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자연수의 집합을 가정하면서 시작한다.  
 
어떤 하나의 자연수를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영어 표현법은 다양하므로, 하나의 자연수는 20개 미만의 영어 단어로 표현될 수도 있고, 20개 이상의 영어 단어로 표현될 수도 있다.  즉 하나의 자연수가 베른의 역설의 집합의 원소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하나의 집합에 대한  서술이 유효화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그 집합에 속한 원소인지 아니지를 정확히 판단 할 수 있도록 서술되어야 한다는 것은 기본이다.  집합론을 배운 적이 있는 사람은 간단히 떠올릴 수 있는 사실이다.  칸토어의 집합론의 모순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하는 역설들은 대부분 이렇듯 자체적으로 오류를 지니고 있는 것들이다.  이러한 역설들을 새로운 이론이 출현했을 때 나타나는 새로운 이론에 대한 문제제기로 볼 수 있고, 긍정적인 현상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문제는 당시, 유럽의 쟁쟁한 수학자 그 누구도 이런 역설들이 자체로 모순을 내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이 역설들이 집합론이 지닌 모순을 드러내는 것에 적극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어떤 서술을 만들고, 그 서술로 모순적인 결과를 이끌어내면, 그리고 그 서술에 집합이란 용어만 들어있으면, 집합론이 지닌 모순을 드러내는 역설로 받아 들여지는 게 당시 분위기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부당한 반작용이 칸토어에게, 그리고 그의 집합론에 가해진 것이다. .
 
만신창이가 된 고독한 천재 칸토어는 극심한 조울증으로 요양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그의 업적이 당대에 인정 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기력을 쇠진한 그는 어렵게 시작한 무한 집합의 분류를 시작단계에서 멈추어 서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한편, 그의 당대 일부 수학자들은 칸토어 집합론의 공리화를 시작한다. 유클리드의 원론(elements) 에 나오는 그 공리화 방법론을 집합론에 도입한 것이다.  집합론을 체계화 시킨 측면도 있지만,.  러셀의 역설을 비롯한 역설들이 주장하는 칸토어 집합론이 지닌 모순, 실제로는 역설들이 지닌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점에서 문제의 소지도 있다. 오직 이러한 역설들을 극복하기 위해 도입된 계급의 공리(Axiom of class)는 그 필요성이 의문일 뿐 만 아니라, 칸토어의 집합론에 심각한 제약을 가한다.  
 
== 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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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토막글|수학}}
{{논리 역설}}
{{집합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