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 고즈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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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에서 유학하였고, 일본 서본원사(西本願寺)의 [[승려|주지승]]이자 학승(學僧)이었다. 27세가 되던 나이에 중앙아시아 1차 탐험([[1902년]] ~ [[1904년]])을 시작으로 [[1914년]]까지 총 3차례 원정을 하였다.
 
[[둔황]](敦煌)과 [[쿠차]] 등지에서 예술품들을 구입하거나 약탈하여 소장을 하고 있었는데, 서본원사(西本願寺)의 파산으로 그 일부를 당시 일본의 [[재벌]]인 구하라에게 팔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 [[1916년]] 구하라의 고향친구인 [[데라우치]]가 총독으로 있던 [[조선총독부]]에 기증되었다(조선광산채굴권에 대한 뇌물로 준 것이다.{{출처|날짜=2009-7-14}}). 이 물품들은 [[해방]] 후 한국 국고에 귀속되어,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오타니의 전체 소장품은 무려 5,000점이나 되었는데, 그 중 1/3은 일본에, 나머지 1/3은 [[한국]]에, 나머지는 [[중국]] [[뤼순]](旅順)에 분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