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남 (전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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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회남'''(淮南)은 중국 전한의 제후왕국이다. 최대 영역은 안후이 성·장시 성·후베이 성에 걸쳐 있었다. 서울은 육(오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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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가 세운 [[항우의 18제후왕|열여덟 제후왕국]] 중 [[영포]]의 구강(九江)나라가 전신이다. 기원전 205년, 영포는 [[전한 고제|한왕]]이 보낸 [[수하]]의 설득을 받아 초나라에서 한나라로 돌아섰고, 초나라의 공격을 받아 나라를 잃고 한왕에게 망명했다. 한왕이 영포를 회남왕으로 봉하면서 회남이라는 국명이 만들어졌다. 기원전 202년, 회남왕 영포와 [[유고]]가 옛 구강나라 영역으로 침입해 이 일대를 주관하는 [[주은]]을 한나라로 포섭했고 한왕과 합류해 항우를 멸망시켰다([[해하 전투]]). 영포는 다른 일곱 왕들과 함께 한왕을 황제로 추대했고, 한왕에게서 [[구강군]]·[[형산군]]·[[여강군 (강남)|여강군]]·[[예장군]]을 하사받아 회남나라의 실체가 형성됐다. 영포의 회남나라의 서울은 구강군 육현으로, 구강군이 [[내사지]]가 된다.
 
기원전 196년, 회남왕 영포는 반란을 일으키고, [[오 (전한)|형나라]]를 공격해 형왕 [[유고]]를 죽이고 형나라 군대를 모조리 빼앗았으며, [[초 (전한)|초나라]]까지도 무찔러 [[유교 (초원왕)|원왕]]을 설현(현 [[짜오좡 시]] [[텅저우 시]])으로 도주하게 했다. 그러나 추에서 고조와 싸워 지고 파양으로 달아났다 처남 [[오신 (전한)|장사성왕]]의 꾀에 빠져 농민에게 죽었다. 고조는 영포가 모반을 일으키자 어린 아들 회남여왕 [[유장 (회남여왕)|유장]]을 영포 대신 회남왕으로 삼았고, 여왕은 수춘을 서울로 삼았다.
 
기원전 174년, 여왕의 반란 모의가 들통나 여왕은 촉으로 유배됐고유배 가는 길에 자결했고 회남나라는 폐해졌다.
 
기원전 168년, [[전한 문제|문제]]가 회남나라를 부활해, [[유희 (성양공왕)|성양공왕]]을 성양나라에서 옮겨와 왕노릇 하게 했다.
 
기원전 164년, 문제가 회남나라를 나눠 여왕의 세 아들에게 주니, 옛 회남나라의 내사지만이 회남나라가 돼 여왕의 맏아들 부릉후 [[유안 (전한)|유안]]이 왕노릇했다. 형산군은 둘째아들 안양후 [[유발 (제북정왕)|유발]]의 나라가 됐고, 예장군과 구강군은 셋째아들 [[유사 (형산왕)|유사]]의 나라가 됐다.
 
기원전 154년, [[오초칠국의 난]]이 일어났을 때, 회남왕 유안도 난에 동참하고자 했다. 그러나 승상이 독단으로 조정 편에 섰고, 또 조정의 구원군을 받았기에 왕국은 무사했다.
 
기원전 121년, 회남왕 유안의 모반 계획이 들통나 유안은 자살하고 봉국은 폐해져 [[구강군]]이 됐다.
 
[[분류: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