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바야카와 다카카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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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다 씨|오다가]]의 [[쥬고쿠 지방|쥬고쿠]]방면군 사령관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의 지휘 아래서 오다 군의 침공은 점점 격렬해졌다. 덴쇼 10年([[1582년]])에는 [[시미즈 무네하루]]가 지키는 [[빗추 다카마쓰 성]]이 포위당해, 다카카게는 데루모토・모토하루와 함께 모리 가문 주력 3만을 이끌고 구원에 나섰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이미 3만의 오다 군과 병력이 팽팽한 상태였는데, 5월에 다케다가를 멸망시킨 노부나가의 본군이 쥬고쿠 지방을 향해 출병을 준비하는 것을 알게 된다. 다카카게는 모리가 오다에게 이길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안코쿠지 에케이]](安国寺恵瓊)를 통해 [[하시바 히데요시]]와의 평화교섭을 비밀리에 진행한다.
 
그해 6월 [[혼노지혼노지의 사건]]이 발생해 [[오다 노부나가]]가 사망하고 히데요시는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 토벌을 위해 [[기나이]]에 병사를 돌려야만 했다. 히데요시를 추격해야만 한다는 [[깃카와 모토하루]]・[[깃카와 모토나가|모토나가]] 부자에게 다카카게는 「맹세를 쓴 종이의 피가 마르기도 전에 추격하는 것은 불의한 일이며, 노부나가의 죽음에 편승하는 일은 상서롭지 못한 일이다」고 주장해, 모리 군이 하시바 군을 추격하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그 외에 히데요시가 기나이에 향할 때 다카마쓰 성을 둘어싸고 있던 제방을 무너뜨리는 바람에 양군 사이에 수렁이 생기는 바람에 추격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덴쇼10년(1582년) 다카카게는 거성을 [[니타카야마 성]]에서 [[미하라 성]]으로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