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켈리아 원정: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 →‎세 장군, 세 가지 전략: 동일 항목 일본어 위키백과 번역
63번째 줄:
===세 장군, 세 가지 전략===
이 원정을 승인한 최초의 민회에서 니키아스, 알키비아데스, 라마코스 3명을 사령관으로 선정했다. 이 결정은 두 번째 민회에서도 변경되지 않았다. 알키비아데스는 이 원정의 제안자이며, ‘전쟁파’ 지도자였다. 니키아스는 알키비아데스에게 비판적인 ‘평화파’ 지도자였다. 한편 라마코스는 50세의 경험이 많은 군인이었며,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 《[[아카르나이의 사람들]]》 중에서는 흰소리를 쏘아대는 영원히 가난한 전사이라고 풍자하고 있다. 그들이 선출된 이유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민회는 공격적인 젊은 지도자들과 보수적인 노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군대 경험이 많은 라마코스가 더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3명의 장군은 각기 다른 전략을 제안했다. 니키아스는 원정 지역을 한정하고 셀리노스로 함대를 진행시켜, 셀리노스와 세게스타 문제를 해결 하자고 제안했다. 그 후, 세게스타가 원정 비용을 전부 부담하지 않으면 시켈리아 각지에서 ‘깃발을 보이고’ 아테네로 귀환하자고 했다.
 
알키비아데스는 외교적 수단을 이용하여 시켈리아 동맹 도시를 얻고, 이어서 셀리노스와 시라쿠사이를 공격할 것을 제안했다. 라마코스는 기습 효과를 기대하고 시라쿠사이를 직접 공격하여 도시 외곽에서 야전을 할 것을 제안했다. 즉시 공격하면 시라쿠사이는 방어 준비가 불충분하여, 조기에 항복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국 라마코스는 알키비아데스의 방안을 지지했다.
 
==전투==
 
===아테네 군 상륙===
 
아테네 함대는 우선 동맹국 군대와 합류하기 위해 코르푸 섬에 가서 함대를 각 지휘관에게 할당하여 3개로 분할했다. 또한 시켈리아의 동맹 도시의 정세를 알아보기 위해 3척을 선발대로 파견했다. 이 시점에서 함대는 [[삼단노선]] 134척(그 중 100척은 아테네의 것), 육상 병력은 [[중장보병]] 5,100명(아테네 병사 2,200명), 궁병 480명, 투척병 700명, 기타 경장보병 120명, 기병 30기, 추가로 130척의 보급선이 있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