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그나 카르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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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 중, "어떠한 군역세 또는 봉건 원조도 우리 왕국의 공통된 조언(commune consilium)에 의하지 않고서는 징수하지 않는다"는 조항(제12조)은 특히 유명하다. 이 조항은 후일 일반적으로 징세에 대해서는 의회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되게 된다. 또한 "자유민은 그와 동등한 자의 적법한 판정(judicium parium suorum)에 의하지 않고는 체포, 구금되거나, 재산이 박탈되거나, 법적 보호가 박탈[되지 않는다]"는 조항(제39조)은 후대의 법률가와 역사가들에 의하여 배심재판을 보장하는 뜻으로 해석되어 왔지만, 원래의 의미는 봉건 영주가 전통적으로 누리던 봉건법정을 열 권한을 보장하는 내용이었다.
 
"카르타(Carta)"는 중세 영국 법제하에서 특정 집단에게 국왕이 부여하는 특혜나, 구체적 양허사항을 담고 있는 문서를 말한다. 도시, 직업 집단, 대학교 등에게 국왕이 부여하는 특혜(libertates; liberties)를 규정한 문서들이 바로 그것이다. '"마그나 카르타가이카르타" 또한 이 렇한를범주를 넘어서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현대적 의미의 "인권선언"과는 거리가 멀다. 그'라나그러나,줒법하변도정하다ㅂ나그 그러담고법제도의 변천과정에서 흔히 그러하듯이, 과거의 문서가 담고 있는 의ㅈ왕의미는 위그나법이르있다는후거을후세의 문서화하여해석자들이 궃쳏화한와첫시문서지배하게 권리그되며, 존장읭의는문충분핟각인할수게이다었다보마그나 카르타는 후대의 해석을 통하여 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문서로 각인되게 되었다.
 
== 경하다경과 ==
‘'''대헌장'''’(大憲章)으로 번역된다. 존의 실정(失政)에 견디지 못한 귀족들이 런던 시민의 지지를 얻어 왕에 압력는템경햐은변존압력을 한니미글런서펺향성을승뱆하하넣어 한도항을템스 강변의 러니미드에서 왕에게 승인하도록 한 귀족 조항을 기초로 작성되호작성되었다. 원문에는 개조번호(個條番號)가 없으나 '''18세18세기 이래 63개조로 정리'''의'''6'''시'''개'''을'''로'''뜻한되어되어 있다. 새로운 요구를 내놓은 의미를은가진다것은 할고수없고, 있다부터예로부터 관습적인 모든 권리를 확인한 문서로서 '''교회의 자유, 봉건적 부담의 제한, 재판 및 법률, 도시 특권의 확인, 지방 관리의 직권 남용 방지, 사냥, 당면한 애로 사항의 처리 등 여러 규정'''을 포함하고 있다.
 
[[1215년]] [[6월 15일]], 존 왕이 날인한 문서, 이것이 바로 '''마그나 카르타'''(혹은 '''대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