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켈리아 원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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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모크라테스]]는 시라쿠사 군의 재편을 제안했다. 그는 15명이나 되는 장군을 3명으로 줄이고 싶었다. 헤르모크라테스, 헤라크레이데스, 시카누스 3명이 선출되었고, 헤르모크라테스는 [[코린토스]]와 [[스파르타]]에 구원을 요청했다. 겨울 동안 아테네는 군자금과 기병을 시켈리아에 보내 다른 시라쿠사 일부 요새를 만들고 성벽을 연장했다.
 
한편, 헤르모크라테스는 [[카마리나]](현재 [[라구사 현]] [[빅토리아]]의 스코그릿티 지구)를 방문하여 동맹을 요구했지만, 아테네의아테네도 [[아르콘]](최고 책임자)이였던 [[에우페모스]] 또한보내 카마리나와의 동맹을 요구했다. 헤르모크라테스는 카마리나와 시켈리아 다른 도시가 시라쿠사와 일체가 되어 아테네에 대항할 것을 바랬지만, 반면 에우페모스는 시라쿠사가 단순히 카마리나를 지배하려는 것이고, 자유를 유지하고 싶다면 아테네와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카마리나는 어느 쪽과도 동맹을 맺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그러나 비밀리에 시라쿠사에 군사를 보냈다. 따라서 아테네는 카르타고와 에트루리아에 도움을 청하고, 또한 아테네, 시라쿠사 모두 이탈리아 반도의 그리스 도시의 지원을 얻고자 했다.
 
시라쿠사의 사절은 [[코린토스]]에서 스파르타를 위해 일하던 [[알키비아데스]]를 만났다. 알키비아데스는 스파르타에 대해 만약 시켈리아가 정복되면 이어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침략할 것이며, 따라서 시라쿠사에 원군을 보내고 아테네 근처의 [[데켈레아]]를 점령하고 요새화하도록 조언했다.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는 데켈레아의 점령을 무엇보다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스파르타는 이 제안을 받아 들여 [[길리포스]]를 원정군 사령관으로 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