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켈리아 원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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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의 개입===
이 직후 스파르타의 장군 [[길리포스]]가 시라쿠사의 구원 요청에 따라 [[히메라]](현재의 [[테르미니 이메레제]]의 동쪽 12km)에 상륙했다. 길리포스는 해병 700명, [[호플리테스]] 1,000명, 기병 100기와 시켈리아 병력 1,000명을 이끌고 시라쿠사로 향했다. 스파르타 군은 에피폴라이 대지에 대응 성벽을 건설하려고 했지만 처음에는 아테네 군에게 격퇴당했다. 그러나 두 번째 전투에서는 기병과 투창병을 잘 이용하여 아테네 군을 격퇴했다. 시라쿠사이 군이 대응 성벽을 완성 시키자 아테네 군의 공성보루는 쓸모없게 되었다. 그 후 에라시니데스가 이끄는 [[코린토스]]의 함대도 도착했다.
 
니키아스는 건강이 악화되어 병을 얻었으며, 이제 시라쿠사를 점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게 되었다. 전령을 이용한 구두로 연락만으로는 불확실하다고 여기고, 아테네로 철수하거나 혹은 대규모 지원군을 보낼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니키아스는 전군이 철수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이 해임될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아테네는 [[데모스테네스]]와 [[에우리메돈]]이 이끄는 증원군을 보내기로 했다. 에우리메돈은 10척의 선박과 함께 즉시 출발하였고, 데모스테네스는 뒤늦게 주력군을 이끌고 출발했다. 한편, [[기원전 413년]] 초에 스파르타는 알키비아데스의 조언을 수용하여 데켈레아의 요새화를 시작했고, 그것을 저지하려는 아테네 군을 섬멸했다.
 
===데모스테네스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