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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정보
'''김명섭'''(金明燮, [[1938년]] [[7월 27일]] ~ [[2013년]] [[6월 21일]])은 [[대한민국]]의 [[약사]] 출신 정치인·기업인이다. [[서울공업고등학교]](50회)-[[중앙대학교]] 약학대(12회)를 시작으로 [[대한민국 국회]] 제13대·15대·16회 국회의원, [[대한약사회]]25·26·27대 회장, [[송천복지재단]] 설립-이사장,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이사장 등을 지냈으며, 작고하기 직전에는 [[구주제약]] 대표이사·회장, [[대한약사회]] 명예회장, 사회복지법인 [[송천한마음의집]] 이사장, 재단법인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명예총재직으로 활동했다.
|이름 = 김명섭
|그림 =
|그림크기 =
|그림설명 =
|출생일 = {{출생일|1938|7|27}}
|출생지 = {{국기|일제 강점기}} [[경성부]] [[영등포정]]<br>(現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사망일 = {{사망일과 만나이|2013|06|21|1938|7|27}}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43길 88 [[서울아산병원]]
|사망원인 =
|거주지 =
|국적 = {{KOR}}
|별칭 =
|의원 선수 = 2
|의원 대수 = 15,16
|정당 = [[열린우리당]]
|지역구 = [[서울 영등포구의 국회의원|서울 영등포구 갑]]
|학력 =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학사<br> [[중앙대학교|중앙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박사
|직업 =
|경력 = [[새정치국민회의]] 보건복지위원장<br/>[[국회]] 정보위원장<br/>[[국회]] 인사청문위원장<br/>[[새천년민주당]] 제3정조위원장<br/>[[새천년민주당]] 사무총장<br/>[[열린우리당]] 상임고문<br/>[[대한민국헌정회]] 이사<br/>[[중앙대학교]] 이사<br/>[[중앙대학교]] 총동창회장<br/>[[한국장애인부모회]] 회장<br/>[[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이사장<br/>[[송천한마음의집]] 이사장<br/>[[대한약사회]] 회장<br/>[[구주제약]] 대표이사
|군복무 = {{KOR}} [[육군]] 병장 제대
|종교 =
|부모 =
|배우자 =
|자녀 =
|친척 =
|서명 =
|웹사이트 =
}}
 
'''김명섭'''(金明燮, [[1938년]] [[7월 27일]] ~ [[2013년]] [[6월 21일]])은 [[대한민국]]의 [[약사]] 출신 정치인·기업인이다. [[서울공업고등학교]](50회)-[[중앙대학교]] 약학대(12회)를 시작으로 [[대한민국 국회]] 제13대·15대제15대·16회 국회의원, [[대한약사회]]25·26·27대 회장, [[송천복지재단]] 설립-이사장,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이사장 등을 지냈으며, 작고하기 직전에는 [[구주제약]] 대표이사·회장, [[대한약사회]] 명예회장, 사회복지법인 [[송천한마음의집]] 이사장, 재단법인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명예총재직으로 활동했다.
 
== 생애 ==
 
=== 약대 진학 ===
서울공고 기걔과를 졸업하며 그가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었을 때, 그는 사회에 억울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신문기자]]가 되길 원했으나 아버지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 신문기자들은 정부에서 돈을 받고 편향된 기사를 쓰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으로 '파리'라고 부를 정도로 인식이 좋지 않았다. 어느날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를 앉혀놓고 아버지는 [[약사]]가 되라며 엄명을 내렸는데 '남들이 부러워하는 깨끗한 직업이며, 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직업이 가장 좋은 직업이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전쟁]]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병에 노출되어 병원 한 번 못 가보고 죽는 이들이 많았는데, 그가 [[약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도 그런 시절을 겪으며 살아온 성장배경 때문이었다. 그렇게 [[1957년]] [[2월]] 그는 [[중앙대학교]] 약학대에 입학하게 된다.
 
=== 군대 생활 ===
 
=== 약업 활동 ===
그는 제대 후 [[1964년]] [[영등포약국]]을영등포약국을 개업하면서 개국[[개국약사약사]]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1973년]] 영등포구약사회 [[회장]]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약사회 회무를 시작으로 [[1978년]] [[구주제약]]을 인수, [[제약회사]] [[CEO]]로 취임하여 이때부터 기업인으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1980년]] 제21대 서울시약사회 [[회장]]에, [[1983년]]에는 제22대 서울시약사회 [[회장]]에 연임하며 약사회에서 기반을 다지게 된다. [[1982년]]에는 [[대한약사회]] [[회장]] 직무대행으로 중앙회무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가 [[1985년]] 길병전 전임 [[대한약사회]] [[회장]]의 작고로 보궐선거에서 제25대 [[대한약사회]] [[회장]]으로 당선된다. 이후에 [[1986년]] 제26대, [[1989년]] 제27대 [[대한약사회]] [[회장]]에 연임 당선되어 약업계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지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1988년]]에는 약업계 발전에 사회적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인 [[동백장]]을 받았다. 8년 동안 [[대한약사회]] [[회장]]으로 연임한 이후 [[1992년]]에는 [[대한약사회]] 총회의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 구주제약 ===
 
=== 정치 활동 ===
[[대한민국 제13대 국회|제13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그는 야당 측의 선거무효 소송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게 된다. [[1988년]] 당시 여소야대의 정국 속에서 여당인 [[민정당]]의 의석수는 고작 5분의 2로 여당과 정부의 권력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상황이었고, 각 부처의 비밀문서의 내용도 야당의원들이 더 잘 알고 있을 정도였다. 당시 28건의 선거무효 소송이 국회에서 진행되고 있을 만큼 정계에선 여당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이 이어졌고, [[민정당]] 소속이었던 그 역시 공격의 칼날을 피해 갈 순 없었다. 야당에선 비누나 수건, 주전자 등을 제시하며 그가 지급한 대가성 물품이라며 주장했으나, 그는 결백을 주장했다. 결국 대법원은 정국의 상황을 고려하여 야당 측의 손을 들어줬고 그는 그 결과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하고 말았다. 하지만 지역주민들 사이에서는 대법원의 판결에 반발하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이후 실시된 재보궐 선거에서도 [[민정당]] 소속 [[나웅배]] 의원이 당선되는 결과를 낳았다. ([[나웅배]] 의원은 재보궐 선거에서 [[평민당]] [[이용희]] 후보를 10098표로 따돌려 38.68%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이 후 그는 [[1996년]] 실시된 총선에서 [[신한국당]] 소속으로 [[영등포]]지역에서 [[대한민국 제15대 국회|제15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다시 정계활동을 시작하게된다. 그러나 이전부터 비리,부패 등으로 문제가 많았던 소속당에게 정치적 환멸을 느낀 그는 이후 [[1998년]], [[신한국당]] 후신인 [[한나라당]] 소속에서 [[새정치국민회의]]로 소속당을 변경하기도 했다. 이 후 [[국민회의]]의 후신인 [[새천년민주당]] 사무총장직을 맡으면서 [[노무현]] 대통령 후보자의 비토론자로 활동했으며, [[열린우리당]] 창당에 가담해 중앙위원 및 상임고문 직을 맡는다.
 
=== 사회복지 활동 ===
 
== 바깥 고리 ==
* {{헌정회|17692155|김명섭}}
* [http://www.gujupguju.co.kr/index.asp 구주제약 홈페이지]
 
{{전임후임 국회의원
|소속정당=[[새천년민주당]]
}}
[[분류:대한민국의 제15대 국회의원]]
 
[[분류:대한민국의 제16대 국회의원]]
[[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분류:대한민국의 약사]]
[[분류:중앙대학교 동문]]
[[분류:서울공업고등학교 동문]]
[[분류:영등포중학교 동문]]
[[분류:1938년 태어남]]
[[분류:2013년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