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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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지 =
|거주지 = {{KOR}}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학력 = [[성균관대학교|성균관대학교성균관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종교 = [[천주교]](세례명: 이냐시오)
|군복무 = [[대한민국]] [[대한민국 해병대|해병]] [[병사 (군사)|병장]](만기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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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 출생과 성장 ===
 
정병국은 1958년 2월 10일에 경기도 여주군 개군면(현재는 양평군 관할)의 농가에서 태어났다. 개군국민학교 재학 중인 1969년에 교육제도가 바뀌어서 서울특별시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은 적어도 중학교 입학 1년 전에 서울로 이사를 가야 하였다. 정병국은 서울에 있는 중학교 진학을 위하여 어떻게 하든 서울로 이사 가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정병국이 너무 어려서 부모 품을 떠나 공부하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하여 고향에서 계속 공부하기를 원하였고 그의 진학을 허락하지 않았으나 결국 아들의 의지를 꺾지는 못하였다. 그리하여 정병국은 새벽기차를 타고 서울로 전학을 가게 되었고 서울정덕국민학교로 전학하여 졸업하였다. 이후 용문중학교와 서라벌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민주화운동 민주화 운동 ===
 
1978년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하였는데 입학하자마자 그는 학생운동에 투신하였고 이로 인해 경찰의 수배명단에 올랐다. 포항에서 도피하던 중 1979년 10·26 사태를 접하고, 곧바로 상경하여 전국 총학생회 부활 준비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아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의 뜻대로 총학생회는 부활하고 있었지만 1980년 5·17 군사 정변 직후 신군부에게 검거되었다. 검거 후 신군부에서 내건 조건은 군 입대 또는 투옥을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군 입대를 결심하고 해병대를 지원하여 헌병으로 사병 복무하였다. 전역 후 복학하여 1984년에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인 민주화 운동을 펼치게 된다. 정병국은 수배를 받으면서도 많은 활동을 하였다. '세인출판사'를 운영하며 서울 지역 대학교 총학생회에서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인쇄물들을 공급하였고 군사 정권과 투쟁하고 있는 학생들을 꾸준히 지원하였다. 그러다 1987년 6월에 국가안전기획부에 의해 검거되어 고문을 받던 중 6·29 선언를 접하게 되었다.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6·29 선언으로 인하여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 있었다. 그 때 도움을 준 사람들은 그의 변론을 자청한 민주화추진협의회 소속 변호사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