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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모스크바 점령작전이 실패한데 격노하여 육군총사령관 [[브라우히취]]를 1942년 12월 19일 해임하고 자신이 직접 그 자리에 취임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 /> 이를 통해 군사적 결정을 효과적으로 집행하고 자신에 고분고분 하지 않은 장교들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더욱이, 히틀러 자신은 경험이 전무하거나 아주 적은 참모장교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구데리안은 회고록에서 "이것은 우리들(총통과 나)을 서먹하게 했고, 이 서먹한 관계는 후에 다시 회복되지 못했다."고 썼다.<ref>Guderian, p.365</ref> 이것은 고위 장교들에 대한 히틀러의 불신임을 증가시켰고, 이것은 독일국방군에게있어 치명적이었다. 독일군은 이제 대비가 안된 [[지구전]]의 전망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추축국이 붕괴되지는 않았지만 전투는 전체적으로 쓰라린 패배였고, 이것은 소련에 대한 독일의 신속하고 결정적인 승리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끝장냈다.
 
1941년 6월 이래 처음으로 소련군은 독일군의 진격을 정지시켰고 물러서게 했다. 그러나 이것은 스탈린을 지나치게 자신감에 충만하게 하여 공세를 확장시키게 했다. 1942년 1월 5일 크레믈린에서 열린 군사회의에서 스탈린은 모스크바 근방, 레닌그라드, 남부러시아를 포괄한 대규모의 춘계반격를춘계반격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코프는 이런 계획에 반대했지만 결국 실행되었다.<ref>Zhukov, tome 2, p.43–44</ref> 그러나 소련군의 부족한 예비병력과 독일군의 노련한 전술때문에 막대한 피해를 내고 궁지로 몰리게 되었다(르제프 전투). 그리고 [[제2차 하르코프 전투]] 패배, 독일군이 갇힌 [[데미안스크 고립지대]] 제거 실패, [[레닌그라드 포위]]를 뚫으려던 [[블라소프]]군의 패배등의 일련의 실패가 계속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런 패배들은 오히려 독일군의 성공적인 남부공략과 [[스탈린그라드 전투]]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스크바 사수는 추축군 침략자에 대한 소련군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1965년 [[유럽전승리 기념일]] 20주년에 [[영웅 도시]]의 칭호를 받았다.<ref name="MosEnc" /> "모스크바 방위" 훈장은 1944년 제정되어 전투에 참여한 병사, 시민, [[소련 파르티잔]]에 수여되었다.<ref>Decision of the Praesidium of [[Supreme Soviet]] of the USSR, dated May 1, 1944, compiled in ''Collection of legislative acts related to State Awards of the USSR'', Moscow, ed. Izvestia, 1984.</ref>
 
== 쌍방 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