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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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암'''(閔黯, 1636년 ~ 1694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여흥 민씨|여흥]]. 자는 장유(長孺), 호는 차호(叉湖).
== 생애 ==
현종 때인 1672년, 문과에 급제해 겸춘추가 되고 지평이 되자 갑인예송에서 서인을 패배하는 데 공헌을 하며 남인 계열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그는 탁남으로 [[영의정]] [[허적]], [[좌의정]] [[권대운]] 등과 [[송시열]]을 사사하는데 반대했다. 이후 숙종 초반기, 남인 집권기에 장령, 사간, 교리, 응교, 집의, 사인 등을 거쳐 당시 [[송시열]], [[김수항]] 등 서인을 실각시켰고 이후 그는 숙종의 총애로 [[승지]]에 제수되고 [[도승지]]로 승진했다가 함경도관찰사로 외직에 나갔다가 이후 1679년에는 [[예조판서]], [[대사헌]], [[한성부판윤]]을 하며 지경연사를 겸했지만 1680년, 경신환국으로 유배를 당했다가 1689년, 기사환국으로 복귀하며 전과 달리 인현왕후를 폐위시킬 것을 강력히 주장했고, 과거와 달리 [[송시열]], [[김수항]] 등을 사사하라는 주청을 올렸다. 이후 [[예문관]][[제학]], [[좌참찬]], [[예조판서]], [[판의금부사]], [[대제학]], [[병조판서]]를 하며 지성균관사, 지경연사, 지춘추관사를 겸했고 아들인 사헌부지평 [[민장도]], 그리고 [[장희빈|중전 장씨]]의 인척이던 [[한성부]][[좌윤]] [[장희재]] 등과 결탁하였다. 또 훈련대장 [[이의징]], 판의금부사 [[유명현]]과도 결탁했다. 그 뒤 [[우의정]]에 올라 조정에서 실세가 되었으며 약방도제조를 겸하며 권력을 누렸다. 1694년, 함이완의 고변 때 추관으로 참여해 옥사를 확대시키려 했지만 결국 갑술환국으로 파직되지만 곧 서용되어 [[좌의정]]이 되었다. 그러나 곧 유배를 떠나고 곧 사사당한다.
 
== 민암을 연기한 배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