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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소년병 ==
최초의 소년병은 신라시대 화랑과 낭도가 있었다. 신라의 어린 귀족 소년들은 어린 소년때부터 군사단체인 화랑에 들어가 '임전무퇴'라는 임무를 걸고 전쟁에 최전방에 임했던 선봉장들이었으며, 신라 화랑의 특징은 신라군의 군기를 높이고, 또한 자살테러를 하는 것에 있었다. 신라군이 무적의 계백 장군의 오천결사대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던 가장 큰 이유도 화랑 관창과 김유신 장군때문이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화랑은 김유신 장군 처럼 장군이 되거나 태종 무열왕처럼 군왕이 되기도 했다. 그들 역시 화랑 출신으로 전쟁터를 누비고 다녔다. 물론 김유신 장군, 태종무열왕은 장군, 군왕이 된 후에도 많은 전쟁을 치뤄야했지만. 이처럼 신라의 군사제도인 화랑제도는, 신라의 최고의 정치체계이기도 했으며 신라 대부분의 군왕, 장군들은 화랑 출신들이다. 화랑으로서 전쟁에서 살아남아야 군왕이나 장군이 되는게 가능했다. 즉, 신라는 어린 소년들인 화랑들이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랑이 귀족 소년들이라면, 낭도는 일반인(평민) 소년들이었다. 화랑이 장군이라면 낭도는 군인(병사)인 셈이다. 전쟁터에서 화랑이 낭도를 지위해서 전쟁했던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에서는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학교장의 독려 등에 의해 자원입대('[[학도병]]')하거나 강제징집 당한 소년병이 2만9천여명에 이른다. 특히, 강제징집자 중에는 만 13~14세의 중학생도 섞여 있었다.<ref>[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40625175408883 나라 위해 목숨 바쳤건만..잊혀져가는 6·25 소년병들] MBC, 2014.6.25.</ref> 이들은 병역의무가 없는 만 18세 미만의 소년이었지만 정식으로 군번을 받은 정규군이었다. [[국방부]]는 60년 간 소년병 자체를 인정하지 않다가 [[2010년]] [[국민권익위원회]]의 권유에 따라 실체를 인정했다. 그러나, 국가유공자로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ref>[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newsview?newsid=20140623154808749 "소년병 징집 법치주의 위배"..참전 64년만에 첫 헌소] 연합뉴스, 2014.6.23.</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