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공방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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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자이스크 방어선 ([[10월 13일]] - [[10월 30일]]) ==
10월10일 13일까지13일 독일군은 모스크바에서 120km 떨어진 모자이스크 방어선에 도달했다. 이 방어선은 이중 방어진으로 급하게 건설되어 칼리닌에서부터 [[볼로콜람스크]], 칼루가까지 연결되어 모스크바 서쪽을 방위하였다. 그러나 직전의 강화에도 불구하고 소련군 전체병력은 (5,16,43,49군) 겨우 9만명에 달해 독일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ref name="Jukes32">Jukes, p.32</ref><ref>Zhukov, tome 2, p. 17</ref> 이 상황에서 주코프는 4개의 주요지점을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그곳은 볼론콜람스크, 모자이스크, [[말로야로슬라베츠]], 칼루가였다. 뱌지마근방의 포위에서 대부분 섬멸당한 소련군 서부전선군 전체는 처음부터 다시 재건되었다.<ref>Zhukov, tome 2, p. 18</ref>
 
모스크바는 시 자체가 요새화되었다. 주코프에 따르면 250,000명의 여성과 청소년들이 동원되어 전혀 기계장비 없이 3백만 입방미터의 흙을 파내, 모스크바 주위에 참호와 대전차진지를 건설했다. 모스크바의 공장은 급하게 군수공장으로 전환되었다. 자동차 공장은 [[기관단총]]을, 시계공장은 [[지뢰]]를, 초콜렛 공장은 야전식량을 생산했고, 자동차 수리소는 손상된 탱크와 군용차를 수리했다.<ref>Zhukov, tome 2, p. 22</ref> 그러나 모스크바가 아직 독일기갑부대의 주파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상황은 매우 위험했다. 더욱이 모스크바는 이제 대규모 공습의 목표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항공공습은 대규모의 대공포대와 민간인 소방대의 효과적인 작업으로 큰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