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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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Chiang Kai-shek in full uniform.jpeg|thumb|left|upright|1942년부터 1945년까지 중일 전쟁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중화민국의 총통 [[장제스]].]]
 
연합국에서 일반적으로 "태평양 전쟁"은 [[제2차 세계 대전]]과 큰 구별이 없거나, 대 일본 전쟁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는 ''[[아시아-태평양 전역전구]]'' 더 널리 쓰이고 있지만, 이는 [[버마 전역]]이나 중국에서의 전쟁 또는 다른 동남아시아 지역에서의 여러 전투와의 관계 측면에서는 부적절한 명칭이었다. 일본에서는 대동아전쟁이라는 이름을 쓰는데, 이는 1941년 12월 10일 당시 일본 내각이 채택한 결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서구 연합군과의 전쟁 및 중국에서 진행 중이던 전쟁을 둘 다 언급하는 것이었다. 이는 12월 12일 아시아 국가들이 서양 국가들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는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질서 하에 놓여야 한다고 설명하면서 대중에 공개되었다.{{sfn|Jansen|2002|p=626}}
 
1945년부터 1952년까지 미 군정 하의 일본에서 이러한 용어들은 사용이 금지되었으며, 전쟁은 공식적으로 태평양 전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1931년 [[만주 사변]]을 포함하여 15년 전쟁이라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