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도르 3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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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분야에서는 모스크바 총주교 니콘(Nikon)에 대한 명예 회복을 실시했지만 [[러시아 정교회]] 고의식파에 대한 탄압은 계속되었다. 군대 지휘 계통을 가문으로 정하는 문벌제를 폐지하고 능력 위주의 군대로 전환하는 군대 개혁을 단행했다. [[1680년]]에는 전국적인 토지 조사를 실시했다. 외교 분야에서는 [[러시아-튀르크 전쟁]]이 종식되었고 [[1681년]] 바흐치사라이 조약을 통해 러시아의 [[키예프]] 지배가 인정되었다.
 
표도르 3세는 인문주의자였던 가정교사인 폴로츠크의 시메온(Simeon)으로부터 당시의 러시아의 귀족 사회에서는 드물게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 표도르 3세는 문학적 재능을 갖고 있었으며 [[라틴어]], [[폴란드어]]를 이해했다고 한다.
 
[[1680년]] [[폴란드]] 출신의 귀족인 아가피야 세묘노브나 그루셰츠카야와 결혼하면서 궁정에서는 아가피야가 들여온 서양의 관습, 패션이 유행했다. 그렇지만 아가피야는 [[1681년]]에 있었던 첫 출산에서 아이들과 함께 사망했고 표도르 3세는 비탄에 빠지게 된다. [[1682년]] 마르파 아프락시나와 재혼했지만 후계자 없이 사망했다. 그의 뒤를 이어 표도르 3세의 동생인 [[이반 5세]], [[표트르 1세]]가 즉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