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번 클럽: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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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업 초기 ===
캐번 클럽은 파리의 재즈 클럽 밀집 지역에서 영감을 얻은 [[앨런 시트너]]가 개업했다. 파리의 재즈 클럽 밀집 지역에서는 지하실을 이용한 많은 클럽이 영업하고 있었다. 시트너는 리버풀로 돌아가면 파리의 재즈 클럽, 르 꺄보 드 라 위셰뜨와 같은 클럽을 개업하려고 생각했고 곧 자신의 이상에 맞는 터널과 아치형의 지하실을 찾아냈다. 이 지하실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방공호로 사용되었던 것이었다. 1957년 1월 16일 개업 후 여기에서 처음 연주한 것은 머지시피 재드 밴드(the Merseysippi Jazz Band)라는 지역의 재즈 밴드였다.<ref name=cavern-history /> 지역의 상업 아티스트 코디 부스가 오프닝 나이트의 포스터 제작을 담당했고, 곧 있어 비틀즈의 오리지널 포스터 제작에 참여한다.
 
재즈 클럽으로 개업한 캐번 클럽은 이내 스키플 밴드의 온상이 되었다. 한편, 시트너의 아버지 조지프 시트너(Dr. Joseph Sytner)와 나이젤 월리는 함께 골프를 했다. 나이젤 월리는 그에게 아들이 경영하는 캐번 클럽에 쿼리맨을 출연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월리는 15세에 프로 골프 수업을 위해 학교를 중퇴했으며 쿼리맨의 차상자 베이스를 담당하고 있었다. 시트너는 밴드가 골프장에서 연주하고 재능을 가늠해 보는 것을 우선 제안했다.<ref name="Spitzp59">{{harvnb|Spitz (2005) ''The Beatles''|p=[https://books.google.com/books?id=70UqHoozgi0C&pg=PT60 59]}}.</ref> 골프장에서의 공연 1주일 후, 시트너는 월리에게 전화하여 1957년 8월 7일, 두 개의 재즈 밴드의 연주 막간에 쿼리맨의 출연을 약속했다.<ref name="Spitzp61">{{harvnb|Spitz (2005) ''The Beatles''|p=61}}.</ref>
 
당시 캐번 클럽에서 스키플의 연주는 허용되고 있었지만, 로큰롤의 연주는 논외로 간주되어 있어 연주 전에 쿼리맨의 멤버간에 연주 곡목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첫 번째 곡은 스키플을 연주했지만, 존 레논이 다른 멤버를 향해 다음다음으로 엘비스 프레슬리의 〈Don't Be Cruel〉를 하자고 제안했다. 밴조 담당 로드 데이비스는 "관객들에게 산 채로 먹힐 거야"라고 경고했지만, 레논은 무시하고 노래를 시작하면서 다른 멤버도 따라 연주하게 강요했다. 반 정도 연주했을 무렵 관객을 헤치고 레논에게 다가온 시트너는 그에게 "망할 록 따위는 집어치워!"라고 쓴 메모를 전달했다.<ref name="Spitzp65">{{harvnb|Spitz (2005) ''The Beatles''|p=[https://books.google.com/books?id=70UqHoozgi0C&pg=PT66 65]}}.</ref> 폴 매카트니가 쿼리맨에 가입하고 처음 캐번 클럽에서 연주한 것은 1958년 1월 24일이었다.<ref name=" SpitzPage125">{{harvnb|Spitz (2005) ''The Beatles''|p=125}}.</ref> 또한 조지 해리슨의 첫 출연은 1961년 2월 9일 점심 시간 세션이었다.<ref name=cavern-history />
 
시트너는 캐번 클럽을 1959년에 레이 맥폴에게 매각하고 런던으로 이사했다.<ref name=cavern-history /> 1960년대 초에는 블루스와 비트 음악 밴드가 캐번 클럽에 정기적으로 출연하게 되었다. 먼저 여기에서 개최된 비트 음악의 스테이지 (Beat night)는 1960년 5월 25일에 열렸으며, 아직 [[링고 스타가스타]]가 드러머로 재직하던 [[로리 스톰 앤 더 허리케인도허리케인]]도 연주했다. 1961년 초에는 현지 DJ [[밥 울러]]가 상주 MC 겸 점심 세션의 책임자가 되었다. 비틀즈의 캐번 클럽에서의 첫 출연은 1961년 2월 9일이었다. 향후 비틀즈의 매니저가 되고, 밴드의 첫 번째 음반 계약을 관할한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여기에 밴드의 연주를 처음 목도한 날은 1961년 11월 9일이었다. 비틀즈에 감화된 엡스타인은 그들의 매니저 직을 맡게 되었다.<ref>{{인용|url=http://www.cavernclub.org/venue_history.php|title=Where it all began....|publisher=The Cavern Club|accessdate=9 January 2009}}.</ref>
 
=== 비틀즈와 다른 출연자 ===
1961년 2월 9일, 캐번 클럽에서의 첫 출연 때 비틀즈는 이미 서독 함부르크 의 인드라와 카이저스캘러라는 클럽에서의 출연을 마치고 리버풀에 돌아온 무렵이었다. 그들의 무대의 스타일은 크게 변화하고 있으며, 그들의 출연이 결정된 것도 아직 함부르크에 있을 때의 일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독일 밴드라고 착각하는 청중도 있었다. 1961년부터 1963년까지 사이에 비틀즈는 캐번 클럽에 292회 출연하였고, 마지막 출연은 1963년 8월 3일이며, 〈She Loves You〉 앨범 발표 1개월 뒤에다가뒤에다 첫 미국 공연 6개월 전의 일이었다. 그 무렵에는 이미 비틀마니아라는 그들의 열광적인 팬을 가리키는 신조어가 탄생 및 영국 전역에서 사용되기 시작하고, 비틀즈를 보고 싶어하는 소녀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동이 빈번이 있었다. 따라서 존, 폴, 조지, 링고 4명은 출연시에는 몰래 숨어 출입해야 했으며 캐번 클럽 같은 작은 클럽에서 청중의 요구에 부응할 수 없게 되었다. 1963년 8월 3일 비틀즈의 캐번 클럽에서의 마지막 출연 후 밥 울러는 비틀즈의 출연 시간대를 현지 알앤비 밴드 마스터 사운드(the Mastersounds)에 할당했다. 비틀즈가 캐번 클럽 출연을 마친 무렵에는 이미 [[EMI]]의 팔로폰 레이블의 녹음 프로듀서 조지 마틴과 음반 계약을 맺고 있었지만,있었다. 이런 리버풀과 맨체스터의 음악 업계의 활발한 움직임은 그때까지 런던에서 떨어진 지역에서 활동하지 않은 녹음 프로듀서들의 눈을 영국 북부 지역에 향하게 영향을 미쳤다했다.
 
그 후 10년간 캐번 클럽에 다른 많은 유명 아티스트들이 출연했다. 그 가운데는 [[롤링 스톤스|롤링 스톤즈]]와 [[야드버즈]], [[홀리스 (밴드)|홀리스]], [[킹크스]], [[엘튼 존]], [[퀸 (밴드)|퀸]] ,[[더 후]], [[존 리 후커]] 등이 있다. 아직 무명 시절이던 실라 블랙도 여기에 휴대품 보관원으로 일했다. 캐번 클럽은 1973년 3월에 폐점, 머지 사이드 관할 철도 회사 머지 레일의 지하 노선 건설 현장이 되었다. 폐점 며칠 전에 여기에서 마지막으로 연주한 것은 네덜란드의 밴드, 포커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