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로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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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제조업자인 카를 린드슈트룀이 설립한 팔로폰은 맨 처음 클래식 음반 레이블로 출발했다. 1926년 영국에 본사를 둔 컬럼비아 그래머폰이 팔로폰을 비롯한 린드슈트룀의 회사를 사들였고 당시 팔로폰이 로고로 썼던 독일 글자 L에서 오늘날 유명한 로고 ₤이 생겨났다.{{sfn|브라이언|2014|p=74}}
 
1931년 컬럼비아와 크래머폰 사의 합병에 이은 EMI의 탄생으로 팔로폰은 영국 신흥 메이저 회사 소속이 되었다. 당시 팔로폰에는 냇 넬라와고넬라와 듀크 엘링턴 같은 미국 스타일이 소속돼 있었지만 한편으로 레슬리 허친슨, 빅터 실베르타같은실베르타 같은 스타들의 음반을 발매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영국 스타들은 2차 세계대전 동안 팔로폰을 떠났고 1938년 독일에서 망명한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 리하르트 타우버만이 유명한 메이저 가수로 남아 팔로폰은 타우버폰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에 이른다.{{sfn|브라이언|2014|p=74}}
 
1950년 EMI는 영국 가수들의 목록을 보강하고자 길드홀 음악 학교 출신의 조지 마틴을 영입했다. 조지 마친은 딕 제임스, 에이먼 앤드루스, 찰리 드레이크, 조니 댕크워스 같은 스타들의 연이은 히트에 관여했으며, 1962년에는 팔로폰의 운영자로 있었다. 하지만 당시 팔로폰은 유수의 스타들이 소속된 컬럼비아나 HMV 레이블의 그늘에 가려 있었다. 조지 마틴이 "영국 자유당처엄 열외였다"라고 표현한 팔로폰에는 히트곡을 낸 가수가 많지 않았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지미 샌드, 독일의 오베른키르헨 어린이 합창단, 트럼펫 연주자 험프리 리틀턴, 스키플 그룹 바이퍼스, 코미디언 피터 셀라스, 피아니스트 미시즈 밀스, 록 가수 애던 페이스와 템퍼런스 세븐을 꼽을 정도였다. 당시 EMI 회장 조지프 록우드 경이 "매해 예상치 못한 이득"이라 묘사한 이 성공 덕분에 조지 마틴은 1962년 6월 마침내 비틀즈와 1년짜리 계약을 맺는다.{{sfn|브라이언|2014|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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