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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의 핵은, 태양계에 존재하는 천체 중에서도 가장 검다. 1986년, [[지오토 탐사기]]가 [[핼리 혜성]]의 핵에 접근하여 핵의 알베도(반사도)가 4 %임을 측정하였다. 또한, [[딥스페이스 1]]호도 2001년에 발레리 혜성에 접근, 관측하였고, 핵 표면의 알베도가 2.4% ~ 3% 정도로 측정하였다. 이는, 달이나 아스팔트의 알베도가 7%인 것에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치이다. 이는 복잡한 유기화합물이 어두운 표면을 구성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태양에 의해 표면이 가열되면 휘발성의 화합물이, 특히 검은 빛의 긴 사슬의 화합물을 남기고 증발하여 석탄이나 원유와 같이 검게 되는 것이다. 혜성의 표면이 매우 검으므로, 열을 흡수하여 바깥층의 기체가 방출된다.
 
1996년, 햐쿠타케 혜성의 관측으로부터 혜성이 X-선을 복사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혜성이 X-선을 복사하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어서 연구자들을 놀라게 하였다. 이는, 혜성과 태양풍의 상호작용에 의해 생겨났다고 생각되고 있다. 이온이 급격하게 혜성의 대기에 돌입하면, 이온과 혜성의 원자와 분자가 충돌하게 되어, 이로부터 이온이 여러개의 전자를 포획하여, X-선이나 자외선의 광자를자외선을 방출하게 된다고 추측되고 있다.
 
=== 궤도의 특징 ===
[[파일:Comet Kohoutek orbit p391.svg|섬네일|[[코후테크 혜성]](적색)과 지구(파랑)의 궤도]]
 
대부분의 혜성은 길게 늘어난 [[타원 궤도]]를 갖는데, 궤도의 한쪽은 태양에 가까이 있으며, 나머지는 태양계 바깥쪽으로 멀어진다. 혜성들은 종종일반적으로 그 [[궤도 주기]]로 분류되는데, 이때 주기가 길수록 타원은궤도의 [[이심률]]은 길쭉해진다커진다.
 
* 단주기 혜성: 일반적으로 공전 주기가 200년 미만인 혜성으로 정의된다. 이들은 보통 다른 행성들처럼 황도면과 비슷한 방향의 궤도를 그린다. 그 궤도는 전형적으로 원일점이 목성 바깥쪽에 위치한다. 핼리혜성의 원일점은 해왕성보다 약간 바깥쪽에 있다. 주기가 극단적으로 짧은 엥케혜성의 경우는 목성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단주기 혜성들은 주기가 20년 미만인 목성족과 주기가 20년 이상 200년 미만인 핼리혜성족으로 세분화된다.
 
== 혜성 연구의 역사 ==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는 시기 동·서양에서는 혜성에 대한 여러 관측과 연구가 있었다. 옛날 사람들은 하늘을 완벽한 세계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깨뜨린 것이 혜성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 나타난 혜성은 우주의 질서를 깨뜨리는 공포스러운 존재였던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핼리혜성의 출연이었다출현이었다. 핼리혜성은 로마시대때 유독 자주 등장했는데 로마인들 역시 혜성은 불행을 예고한다고 생각했다. 로마의 정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됐을 때 천문학자들은 붉은 혜성을 낮에도 목격했으며, 사람들은 이 혜성이 율리우스가 신으로 변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라 믿었다. 불길함을 암시한다는 믿음때문에 로마의 황제 네로는 혜성이 나타날때마다 주변에 있던 신하들을 죽였다. '가장 중요한 신하들을 처형해 하늘의 분노를 피해야 한다'는 점성술사들의 의견을 따른 것이었다. 대한민국에도 불행을 암시한 혜성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신라시대에는 왕의 죽음이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을 때 헤성이 등장했는데, 장보고가 염장에게 암살당했을때도 혜성이 나타났다고 전해진다. 당시 기록에는 혜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 빛은 대지를 환하게 했고 우레와 같은 소리가 있어 산이 붕괴되고 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 혜성의 꼬리는 페가수스 자리로 내달았고 55일만에 사라졌다".<ref name="서프"/>
 
조선시대때 나타난 혜성 역시 불길한 조짐으로 해석됐다. 왕은 혜성이 나타날때마다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는데 혜성은 역모나 반역의 징조로 해석됐기 때문이었다. 조선 개국 후 처음 나타난 핼리혜성은 1456년 23일에 걸쳐 관측되었는데 며칠 후 의정부 우찬성인 정찬손과 김질이 세조에게 알현을 청했다. 그 결과 사육신의 단종 복위 계획이 밝혀졌다. 사건에 연루된 이들은 일주일 후 처형되었으며 이들 중 일부는 후대에 사육신으로 기록된다. 핼리혜성은 당시 민감한 정치 사안인 단종 복위라는 사건을 암시했다고 여겨진 것이었다. 1531년 나타난 핼리혜성은 중종 때 좌의정까지 오른 김안로의 등용과 시기를 같이하고 있다. 중종의 외척인 김안로는 희대의 간신으로 남아있는데 그가 한성보 판인에 제수된 다음날 하늘에 10여자에 이르는 긴 혜성이 나타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사람들은 혜성의 출연을 하늘의 경고로 인식했던 것이다. 실제로 좌의정까지 오른 김안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정족을 제거하는 공포정치를 폈다. 6년 후 결국 김안로는 문정왕후 폐위 기도가 발각되어 사약을 받고 만다. 핼리혜성은 왕과 왕실의 죽음을 예견하기도 했다. 1607년 병석에 누워 있던 선조는 그해 여름 핼리혜성이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고 6개월 뒤 죽게 된다.<ref name="서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