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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우장]]이 창릉(昌陵; [[전한 성제|성제]]의 능묘) 조성을 멈추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을 때, 평당은 이에 반대하였다. 그러나 결국 조성을 멈추는 쪽으로 결정되었고, 순우장은 공적을 인정받아 열후에 봉해졌다. 평당은 다시 순우장이 비록 좋은 진언을 하였으나 열후가 되기에는 알맞지 않다고 하였고, 결국 노여움을 사 [[거록군|거록]]태수로 좌천되었다. 이후 [[황하|하수]](河水)의 치수를 담당하여, 하수의 제방 관련 업무를 맡았다.
[[전한 애제|애제]] 즉위 후, 중앙으로 들어와 광록대부(光祿大夫) · 제리(諸吏) · 산기(散騎)가 되었다. 이후 다시
아들 [[평안]] 또한 경서에 밝아 출세하였고, [[전한 평제|평제]] 때 [[승상|대사도]]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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