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약수"의 두 판 사이의 차이

164 바이트 추가됨 ,  4년 전
편집 요약 없음
|이름= 김약수
|출생일= [[1890년]] [[10월 21일]]
|출생지= [[조선]] [[경상남도경상도]] [[동래군|동래]]
|사망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직할시|평양]]
|사망일= {{사망일과 만나이|1964|1|10|1890|10|21}}
|국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당 = 무소속
|학력= 중화민국 장쑤 성 난징 진링 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학력=
|직업= 독립운동가, 정치가
|부모 = 김은홍(부)
|종교=
|의원 선수 = 1
|자녀=
|부모=
|친척=
|서명=
== 생애 ==
=== 생애초기 ===
부산에서 김은홍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본명은두전이었다본명은 김두전이었다.
 
서울로 상경하여 휘문의숙을 거쳐 경성공고로 진학했다. 경성공업학교를 거쳐 일본으로 유학, 일본대학 신학과에 입학하였다. 일본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귀국, 고향으로 돌아와 항일독립운동에 투신하여 기장광복회 회장직을 맡았다. 유년시절부터 친구였던 약산 김원봉과 천장 이여성과 가까이 지냈던 그는 1918년 고향인 기장에서 항일독립운동을 하다가 이들과 함께 독립운동의 뜻을 품고 중국 망명을 결심, 18년 중국 남경으로 건너갔다.
 
원래 이름은 두전'''김두전''', 또는 두희라'''김두희'''라 불리던 그는 이때 [[김원봉]]과 함께 일경의 추적을 피해 개명의 필요성을 느끼던 중, 작명을 알던 [[김원봉]] 인척의 도움으로 이름을 약수와 약산으로 각각 개명하였다 한다.
 
중국 남경에 도착한 김약수는 [[1918년]] [[금릉대학]] [[영문학]]과에 입학 [[영어]]를 배우던 중, [[김원봉]]과 서간도로 건너가 군대를 조직하고 [[상해]]에 돌아와 잡지를 발간하며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인 대표를 파견할 계획을 수립한다. 이에 따라 김약수는 군대를 양성하기 위한 둔전과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만주]] [[길림성]]으로 떠났다. 그러나 김약수는 국내의 [[3.1운동]]의 소식을 듣고는 대중을 기초로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김원봉]]·[[이여성]]과 작별하고 [[1920년]]에 귀국했다. [[김원봉]]은 만주에서 의열단을 조직, 무장투쟁의 길로 접어들었고, 이여성은 ML계로 김약수는 북풍회 계열로 각각 다른 길에서 독립운동을 하게 된다.
[[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
[[분류:김원봉]]
[[분류:휘문고등보통학교 동문]]
[[분류:경성고등공업학교 동문]]
[[분류:니혼 대학 동문]]
[[분류:금릉 대학 동문]]
익명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