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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Castro-kruschev.jpg|thumb|right|카스트로와 [[니키타 흐루쇼프|흐루쇼프]]]]
[[파일:Bundesarchiv_Bild_183-L0614-040,_Berlin,_Fidel_Castro_an_der_Grenze.jpg|thumb|left|[[동독]]을 방문한 카스트로 (1972년)]]
그가 산티에고 감옥에서 수감 생활을 하던 도중, 피델 카스트로 수감에 분노한 쿠바 민중들이 관공서, 경찰서 등을 습격하였으며, 대대적으로 파업과 학생 운동이 거세졌다. 쿠바의 경제난이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풀헨시오 바티스타]] 결국 피델 카스트로가 산티에고 감옥에서 약 2년 째 있던 해에 특별 사면을 한다. 감옥에서 나온 피델 카스트로는, 남미쪽을 순방하여 동료들을 모을 것을 다짐하고 [[1955년]] 멕시코로 망명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같은 해 7월달에 혁명 동지인 [[체 게바라]]를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도 쿠바의 바티스타 정권을 뒤엎고 혁명을 일으키기 위한 혁명 과제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소식은 [[풀헨시오 바티스타]]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고, 결국 멕시코에 피델 카스트로 체포 요청을 하여 피델 카스트로는 멕시코에서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멕시코의 혁명주의자중 한 명이었던 [[라사로 카르데나스]]의 도움으로 얼마지나지 않아 사면을 받아 다시 나오게 된다. [[1955년]]에서 [[1956년]] 까지 피델 카스트로는 멕시코에서 혹독한 게릴라 훈련을 받고, 게릴라 전술을 탐독했다.
 
그는 중남미, 쿠바에서 망명한 사회주의자 및 좌파민족주의자들을 모아 약 800명의 혁명군을 모으게 된다. 이 과정에서 쿠바 민중들의 지지를 얻어 금전적 도움을 받아 군사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56년]] [[그란마]] 함선을 타고, 쿠바에 상륙, 바티스타 정부군과 내전을 치루었다. 바티스타 정부의 공군 때문에, 상륙 도중 수많은 병사를 잃었지만, 상륙한 후 민중의 지지를 받아, 쿠바 혁명군의 수는 급증하였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바티스타는 쿠바 혁명군에 비해 월등한 장비를 갖춘 대대급(17보병대대) 규모의 병사들을 파견하지만, 쿠바 혁명군은 수적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바티스타 정부군을 별 탈 없이 해치웠다.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군은 쿠바 내에서 게릴라 기지를 구축하기 위해 비교적 산세가 험한 [[시에라 마에스트라]]에 기지를 구축하였다. 그리고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군은 주기적으로 도시에 혁명에 참가하자는 전단지를 돌리면서 혁명군 병사들의 수를 증가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