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국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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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고 = [http://tamyangkook.com/main.htm 담양국씨담양 국씨 대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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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국씨'''(潭陽 鞠氏)는 [[전라남도]] [[담양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목록|한]][[한국의 외래 귀화 성씨|국의]] [[한국의 성씨와 이름|성]][[한국의 성씨|씨]]이다.
 
== 역사 ==
담양 국씨(潭陽 鞠氏)의 시조는 국주(鞠周)는 [[송나라]]의 공경대부(公卿大夫)였는데, [[금나라]]가 [[송나라]]의 황제였던 [[북송 흠종|흠종]](欽宗)을 납치해간 정란(政亂)이 발생하자 이 난을 피해 1128년(인종 6) [[고려]]에 입국하여 귀화하였다. 국주는 [[고려]]에 입국하자마자 [[인종]]을 배알하고 군신의 예를 취하였는데, [[인종]]이 크게 기뻐하면서 국주에게 감정관(監正官)을 제수(除授)하여 [[고려]] 조정에 출사(出仕)시켰다. 그리고 당시 중원(中原)의 신흥 강국으로 부상하던 [[금나라]]에서 [[송나라]]를 제압하고 [[고려]]에게 군신의 관계로 대할 것과 많은 공물(貢物)을 요구하였는데, [[인종]]은 국주를 금국봉사(金國奉使)로 임명하여 [[금나라]]의 요구에 외교적으로 대처하게 하였다. 국주는 왕명을 받고 여러 번 금나라에 왕래하면서 군신관계의 부당성을 주장하여 외교적으로 평등관계를 맺고 귀국하였다. 이에 인종은 국주에게 삼중대광(三重大匡) 추성군(秋城君)에 봉하고 담양(潭陽)을 본관으로 정해주었다고 한다.
 
3세조 국영돈(鞠暎敦)은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를 지냈고, 5세조 국호(鞠虎)는 좌정승(左政丞)을 지냈으며, 8세조 국량(鞠樑)은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냈고, 9세조 국유(鞠襦)는 호부상서(戶部尙書) 겸 판의금(判義禁)을 지냈다고 한다.